넥센 히어로즈 내야수 서동욱(31)은 '멀티플레이어'다.
내야에서는 주로 2루수로 나서지만 모든 포지션이 가능하다. 상황에 따라 외야 전포지션도 소화할 수 있다. 지난해에는 위기 상황에서 '제3의 포수'로 나가기 위해 훈련도 받았다. 투수 빼고 전포지션이 가능한 선수다. 넥센으로 이적한 2013년부터 현재까지 뛴 포지션만 나열해도 1루수, 2루수, 3루수, 유격수, 좌익수, 우익수까지 총 6개 포지션이다.
멀티플레이어의 고충은 확실한 자기 자리가 없다는 것이다. 서동욱도 그렇다. 주전들에게 구멍이 생기면, 어디든 그 자리를 메운다. 그리고 주전이 복귀하면, 다시 벤치멤버의 자리로 돌아간다.
백업선수들은 조급할 수밖에 없다. 오늘 못해도 내일이 있는 주전들과 달리, 제한된 기회 안에서 자신의 진가를 보여줘야만 한다. 그래야 더 많은 기회가 생기고, 이를 통해 주전으로 도약할 수 있다.
서동욱은 최근 주전 2루수 서건창의 무릎 십자인대 부분파열로 인해 기회를 잡았다. 내야 멀티요원인 김지수와 기회를 나눠 가졌지만, 지난 주말 kt 위즈와의 3연전에선 눈도장을 받았다. 그는 공격력에서 확실한 강점이 있다.
서동욱은 세 경기 모두 2번-2루수로 선발출전해 11타수 5안타 2홈런 3타점을 기록했다. 최근 부진을 떨쳐내는 활약이었다. 이제 김민성의 2루 투입이 예정돼 있어 기회가 다시 줄어들 것으로 보이지만, 자신감을 찾은 것만 해도 큰 수확이다.
그가 이번 3연전을 통해 깨달은 게 있다. 서동욱은 "오키나와 캠프 때까지 컨디션이 좋아 올 시즌 기대를 하고 있었는데 시즌 개막을 앞두고 옆구리 통증으로 2군에 가 심리적으로 많이 쫓겼던 것 같다"고 털어놨다.
그는 오키나와 연습경기에서 홈런 3개를 몰아치면서 올 시즌 활약을 기대케 했다. 스위치타자로 복귀해 좌·우타석에서 모두 홈런을 때려내며, KBO리그 유일의 한 경기 좌우타석 홈런 기록을 갖고 있는 자신의 가치를 입증하는 듯했다.
당시만 해도 서동욱은 "백업에서 시작하지만 주전들도 조금은 긴장하지 않을까. 기존 선수들에게 도전장을 내밀겠다"며 자신감을 내비쳤다. 하지만 갑작스런 옆구리 부상으로 이 분위기를 이어가지 못했고, 1군에 올라온 뒤에도 다시 조급해지고 말았다.
여유를 찾게 된 건 우연한 기회에서였다. 덕아웃에서 후배 김하성의 타격을 관찰하다 '이거다' 싶은 포인트를 찾았다. 투수가 공을 던질 때, 김하성이 타격 타이밍을 길게 가져가는 것을 본 것이다. 자신과 달리, 후배는 타석에서 보다 여유로운 모습이었다.
까마득한 11년 후배의 타격을 보고 배운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서동욱은 김하성의 타격 메커니즘에서 돌파구를 찾았다. 조급함으로 인해 공을 보는 타이밍이 짧아지자, 투수의 공이 더 빠르게 느껴졌다. 김하성처럼 보다 긴 호흡으로 공을 보면서 쭉 당겨서 자기 스윙을 하기 시작하자, 좋은 결과가 나왔다.
좋은 모습을 보였지만, 다시 벤치다. 넥센은 '2루수 김민성-3루수 윤석민' 카드로 서건창 공백에 대처할 예정이다. 하지만 서동욱은 "내일 목표는 한 타석 더 나가는 것"이라며 묵묵히 자신의 역할에 충실하며 기회를 잡겠다는 의지를 내비쳤다. 든든한 멀티플레이어, 서동욱은 또다시 팀에 없어서는 안 될 '소금' 같은 역할을 준비한다.
이명노 기자 nirvana@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