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체력도, 정신력도 50%가 올라오지 않은 상태입니다."
푸념이 먼저 였다. 12일 장충체육관에서 벌어진 일본 V.프리미어리그 우승 팀 JT 선더스와의 2015년 IBK기업은행 한-일 V리그 톱매치를 앞둔 김세진 OK저축은행 감독은 "우승 이후 10일을 쉬었다. 공 훈련도 1시간밖에 하지 못했다. 숙소에서 웨이트훈련 두 차례 한 것이 전부다. 공식적으로 휴식기간이다. 선수들에게 더 해달라고 얘기 못한다"고 밝혔다.
이어 "시즌이 끝나고 곧바로 톱매치를 하는 것도 생각해볼 문제지만, 대회가 열리는 것 자체를 반대한다. 지금 선수들의 체력도, 정신력도 50%도 올라오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상황은 녹록지 않았다. OK저축은행 선수들의 몸은 만신창이다. 부상 선수들이 많다. 우승하기 전까지 부상이 있어도 참고 뛰었던 선수들이 치료를 위해 병원을 찾고 있다. '쿠바 특급' 시몬은 이미 드러났던 무릎 부상을 치료 중이고, 국내 선수들도 고장난 몸 상태를 조금이나마 회복시키려고 노력 중이었다. 이런 상태에서 톱매치를 치른다는 것은 큰 부담이었다.
하지만 OK저축은행은 한국 프로배구의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무엇보다 이미 여자부에서 먼저 자존심을 구겼다. IBK기업은행이 일본의 NEC 레드로케츠에 세트스코어 0대3으로 완패했다. 김 감독은 "'기업은행이 패해서 우리라도 좀 해야 한다'며 선수들에게 강조했다"고 설명했다.
최 윤 아프로서비스그룹 회장의 간곡한 부탁도 있었다. 김 감독은 "구단주의 부탁이 있었다. 그래서 베스트 멤버로 엔트리를 구성했다"고 말했다. 이날 최 윤 회장은 응원전도 국가대표급으로 치르라고 주문했다고 한다. 장충체육관에는 축구 A매치 때 사용되는 '오~대한민국' 응원가가 울려 퍼졌다.
OK저축은행 선수들은 또 다시 놀라운 투혼을 발휘했다. OK저축은행 특유의 배구를 살려냈다. 끈끈한 수비를 바탕이 된 빠른 공격이 일품이었다. 매 세트 경기를 즐긴 OK저축은행의 젊은 피들은 무서운 뒷심도 발휘했다. 세트스코어 1-2로 뒤진 상황에서 3대2로 역전승을 거뒀다. OK저축은행 덕분에 2010년 삼성화재가 파나소닉을 물리친 이후 5년 만에 한-일 톱매치에서 웃은 한국 프로배구였다. 대회 MVP에는 레프트 강영준이 선정됐다.
김진회기자 manu35@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