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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근 감독, 괴로워도 투수 실험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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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고 속 편한 사람은 없다. 특히나 성적이 모든 것을 대변하는 프로야구의 세계에서 패배는 용납하기 어려운 잘못이다. 승부사들은 그래서 패배앞에 밤잠을 설친다.

요즘 한화 이글스 김성근 감독(73)는 쉽게 잠을 못 이룬다. 예전에도 경기 구상을 하다 새벽을 밝히는 일이 다반사였지만, 올해는 그런일이 더 잦다. 시즌 초반, 팀을 운용하기가 만만치 않아서다. 4일까지 겨우 정규시즌 5경기를 치렀을 뿐인데, 피로감은 마치 20경기쯤 치른 듯 하다.

한화의 시즌 초반.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다. 지난 시즌 좋은 성적을 낸 강팀과의 경기가 연달아 잡혀있다. 게다가 상당수 주전 선수들이 부상으로 빠진 상태다. 그래도 첫 5경기에서 연패에 빠지지 않고, 2승3패로 승률 5할 언저리에 있다는 건 고무적인 일이라 할 수 있다. 김 감독은 "이렇게 1승1패씩 반복하면서 4월에 5할 승률을 유지하는 게 목표"라고 한다.

그런데 첫 5경기를 보면 한 가지 특이한 점을 발견할 수 있다. '벌떼 마운드'나 '포지션 경계 파괴' 등 이전까지 김 감독 스타일의 야구가 여전히 유지되고 있지만, 그 안에서 미묘한 변화의 기류가 감지된다. 자신의 경기 운영 스타일을 유지하면는 동시에 '실험'을 하고 있다. 힘도 들고, 스트레스도 이만저만 아니다. 하지만 '지금'이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이기도 하다.

김 감독의 '실험'은 근본적으로 한화의 경쟁력 강화를 이끌어내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때마침 주전 선수들이 부상으로 빠진 상황. 가능한 한 여러가지 카드를 타이트한 실전에 투입해 과연 어떤 힘을 낼 수 있는 지를 알아보는 것이다. 아직은 팀간 격차가 크지 않고, 훗날을 도모할 수 있는 시즌 초반이기에 가능한 일들이다.

대표적인 것이 투수진 운용이다. 좌완 선발 요원 유창식은 지난 1일 대전 두산 베어스전에서 1-3으로 뒤진 6회초에 깜짝 불펜으로 나왔다. 원래 선발 로테이션에 있던 투수. 김 감독은 "그간 별로 많이 안던져서 (실전때) 1이닝 정도 던져보게 하려고 했다"고 설명했다. 투수의 실전 감각 강화와 함께 타이트한 상황에서 필승 요원으로서의 활용가능성도 알아본 기용법이다.

만약 여기서 유창식이 잘 던졌다면 '일석이조'의 효과를 기대해볼 만했다. 하지만 결과는 대실패. 유창식은 황당한 '15구 연속 볼'을 기록하며 흔들렸다. 아직은 보완점이 많다는 걸 드러낸 셈이다. 승리를 놓쳤지만, 유창식의 제구력과 배짱이 여전히 덜 다듬어졌다는 것, 그리고 불펜 요원으로서의 활용도 역시 크지 않다는 것을 재확인한 건 소득이다. 이런 오류는 다시 반복되지 않는다.

또 3일 창원 NC 다이노스전에서 보인 불펜 기용도 어떤 의미에서는 김 감독의 실험이라고 해석가능하다. 선발 송은범을 2이닝 만에 내린 건 구위와 제구력이 형편없어서다. 이건 김 감독 특유의 승부수다. 원래 김 감독은 시즌 초반 송은범에 대해 그다지 신뢰하지 않는다. 스프링캠프에서 종아리 통증 등으로 투구수가 많지 않아 긴 이닝을 버티기 힘들다. 흔들리면 바로 바꾼다는 원칙이 서 있었다.

2회까지 송은범은 정말 '운이 좋아' 2점만 허용했다. 김 감독은 0-2로 뒤진 3회부터 곧바로 불펜을 가동했다. 박정진(1이닝 무실점)에 이어 안영명까지는 승부수였다. 그러나 안영명이 5회에 2점을 내준 이후부터는 기용 패턴이 좀 달라진다. 허유강부터 정대훈까지 4명의 투수를 모두 투구수 20개 이내에서 짧은 호흡으로 바꿨다. 권 혁(5개)과 정대훈(4개)는 마치 원포인트 릴리프처럼 썼다.

사실상 승부가 갈린 상황에서 불펜을 길게 운용하지 않고, 타이밍을 빨리 끊어가면서 여러 투수로 상대를 지치게 하는 법. 김 감독의 전매특허다.

그런데 8회 1사후부터 연이어 등판한 정대훈과 장민재는 분명 가능성이 있긴 해도 아직은 보완점이 많은 투수들이다. 시즌 끝까지 1군에 남아있을 지 여부가 불투명한 전력들이다. 하지만 미래를 생각하면 분명 성장시켜둬야 하는 투수들이기도 하다. 그래서 김 감독은 이들에게도 힘든 상황에서 1군 경기에 나서도록 한 것이다. 결과적으로는 이들이 5실점을 해 내용이 나빴다. 그러나 이렇게 얻어맞는 게 또 하나의 경험이 될 수 있다.

분명 이런 기용법은 시즌 중반, 아니 5월만 되더라도 시행하기 어렵다. 그러나 아직 10경기도 채 안 치른 시점이라면 해볼 만 하다. 어차피 전력이 완전치 않다면 홈 더 긴 관점에서 실험을 해두는 것도 나쁘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지금까지 결과는 썩 좋지 않았다. 그걸 지켜보는 김 감독도 괴롭긴 마찬가지. 씁쓸한 표정으로 덕아웃에서 수첩에 빼곡히 메모를 하면서 김 감독은 마음 속에 칼을 갈고 있다.

이원만 기자 wma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