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김하성이 유격수로 많이 나갈 겁니다."
넥센 히어로즈의 비시즌 화두는 강정호(피츠버그 파이어리츠)가 떠난 빈자리였다. 40홈런을 때리는 유격수의 해외 진출. 수비는 물론, 공격에서도 큰 공백이 느껴질 수밖에 없다. 스프링캠프 내내 넥센은 강정호의 대체자 찾기에 나섰고, 개막과 함께 그 결론이 나왔다.
넥센 염경엽 감독은 28일 개막전에 앞서 고졸 2년차 내야수 김하성이 주전 유격수로 뛸 것이라고 선언했다. 예상됐던 결과였다. 공격력이 좋은 윤석민이 유격수에 도전했지만, 야구를 시작한 뒤 처음 유격수 수비에 나서 고전했던 게 사실이다. 단시간에 기량을 끌어올리긴 했지만, 한 시즌을 이끌고 갈 만한 수비력은 아니었다.
반면 김하성은 탁월한 수비력을 갖고 있다. 넓은 수비범위와 빠른 풋워크, 좋은 어깨 등 유격수에 필요한 자질을 모두 갖췄다. 지난해 신인드래프트에서 2차 3라운드에 건진 원석이다. 지난해 1군에서 백업 내야수로 뛰었고, 생각보다 빨리 주전 기회를 잡았다.
▶주전의 조건, '간절함'에서 승리한 김하성
염경엽 감독이 내세운 주전의 조건은 '절박함'이었다. 그는 시범경기 당시 "한 선수가 90경기 이상 뛰면서 주축으로 가야 한다. 기술도 중요하지만, 주전에 대한 책임감이 있었으면 좋겠다"며 "주전으로서 책임감은 간절함이라고 생각한다. 아무리 감독이 기회를 주고 잘 해도, 간절함이 있는 선수에게 자리를 뺏길 수밖에 없다"고 밝힌 바 있다.
수비력은 물론, 절박함에서도 김하성이 다소 앞섰다고 볼 수 있다. 사실 염 감독은 스프링캠프 때부터 윤석민이 자신의 한계치를 뛰어넘는 모습을 보여주길 기대했으나, 다소 기대에 미치지 못한 측면이 있었다.
그래도 염 감독은 윤석민을 감쌌다. 그는 "석민이는 30~40경기 정도 뛰면서 경험을 쌓으면, 내년에 더 자주 나갈 수 있을 것"이라며 "3년 뒤에는 100경기에 나서는 유격수가 될 수 있다. 미리 썼다 실패하면 안된다. 준비가 됐다면 썼겠지만, 지금은 과정을 만들어가는 게 더 좋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염 감독은 유격수 후보군이 당장 강정호가 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고 했다. 억지로 한다고 되는 일은 아니다. 그는 성장 가능성을 가진 선수들이 이번 기회를 통해 팀과 함께 성장했으면 했다. 팀과 개인의 미래 모두를 찾길 원했다.
▶정근우부터 강정호까지, 김하성에게 필요한 '과정'
김하성은 고졸 2년차다. 경험 부족이라는 아킬레스건을 갖고 있다. 하지만 염 감독은 느긋하게 김하성을 기다려주겠다는 생각이다. 그는 "하성이에게 당장 정호처럼 하길 원하는 건 아니다. 정호도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런 과정을 거쳐야만 한다"고 했다.
김하성에게 기대하는 건 당장 그가 할 수 있는 것들이다. 예를 들면, 최대한 컨택트 능력을 발휘해 공을 맞히는데 집중하고, 기습번트를 대거나 도루를 해서 상대를 흔드는 역할이다. 타격이 완성되지 않은 선수들이 할 수 있는 최대치를 보여줬으면 하는 것이다.
염 감독은 "그렇게 기본적인 걸 쌓아서 가야 한다. 1군 선수로서 밑바탕부터 깔아야 한다. 하성이가 캠프 때 잠시 정호처럼 하려고 하더라"며 웃었다. 공격력을 보여주기 위해 의욕이 앞섰던 김하성에게 코칭스태프는 적절한 시기에 조언을 건넸다. 그리고 김하성은 지금 자신이 전력을 다해야 할 부분을 찾았다.
김하성은 개막전에서 5타수 1안타를 기록했다. 2회 첫 타석에서 좌전안타를 치긴 했지만, 이후 침묵했다. 하지만 수비에서는 매끄러운 모습을 보였다. 시범경기 때 선보인 넓은 수비범위를 통해 가운데 깊은 코스의 타구를 한 바퀴 돌아 정확히 송구하는 모습도 나왔다.
아직은 다듬어지지 않은 원석이지만, 천천히 시간을 두고 키우면 강정호 못지 않은 '보석'이 될 수도 있다. 염 감독은 김하성이 초기엔 정근우(한화)처럼 투지 넘치는 모습을 보이고, 점차 몸을 키워 강정호 같은 공격력을 가진 선수가 되길 원하고 있다.
이명노 기자 nirvana@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