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위 스플릿, 친구야 네가 가라."
지난 5일 K리그 클래식 개막을 앞두고 열린 미디어데이에서 조성환 제주 감독은 개막전 상대인 노상래 전남 감독을 도발했다. 1970년생 개띠클럽 '견우회'의 절친이다.
8일 오후 2시 전남 광양구장에서 개막전 직전 양감독을 만났다. 노 감독과 조 감독의 데뷔전이자, 첫 맞대결이다. 조 감독은 급수습(?)에 나섰다 "노 감독이 농담인 줄 알 것이다. 올시즌 같이 잘됐으면 좋겠다"고 덕담했다. 이어 전남 라커룸에서 만난 노 감독은 웃음으로 화답했다. "그날 옆자리에 앉은 조 감독이 안절부절하더라. 마이크를 잡기 전에 '친구야, 듣기만 하라'고 언질하더니 그렇게 쎈말을 하더라"며 웃었다. "선의의 경쟁을 할 것이다. 축구는 말로 하는 것이 아니다. 그라운드에서 행동으로 보여주겠다"고 했다.
전남의 제주 징크스는 골깊다. 2014년 9월 29일 이후 5연패했다. 2012년 7월21일 이후 8경기 무승(1무7패)다. 특히 지난해 9월 6일 3번째 맞대결이었던 제주 원정은 아픔이었다. 박수창에게 4골을 허용하며 2대6으로 패하는 수모를 겪었다. 노 감독은 "선수들에게 따로 동기부여할 필요가 없을 만큼 선수들 스스로 이겨야할 이유를 잘 알고 있다"고 했다. 조 감독은 "전남 선수들의 각오가 남다를 것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우리 선수들에게 뜨거운 가슴, 차가운 머리를 이야기했다. 냉정하게 평정심을 유지하는 경기를 주문했다"고 했다.
광양구장엔 1만2608명의 만원관중이 들어찼다. 90분 내내 시선을 뗄 수 없는 뜨거운 경기였다. 후반 5분 정다훤의 선제골, 후반 34분 스테보의 동점골이 터졌다. 피말리는 신경전의 결과는 무승부였다. 양팀은 1대1로 비겼다.
전반 내내 일진일퇴의 공방이 이어졌다. 초반엔 전남의 공세가 거셌다. 전반 9분 오른쪽 풀백 최효진이 박스안으로 파고들며 날린 슈팅이 제주 골키퍼 김호준의 손끝에 걸렸다. 전반 15분 이종호-스테보-안용우 라인이 연결됐다. 스테보의 패스를 이어받은 안용우의 왼발 슈팅이 불발됐다.
전반 20분 이후 제주가 중원의 우위를 바탕으로 점유율을 높여갔다. 김현이 뒤로 슬쩍 흘려준 볼을 까랑가가 노려찼으나 김병지의 손끝에 걸렸다. 전반 37분 레안드리뉴의 송곳 크로스를 이어받은 스테보의 슈팅이 작렬했지만 아쉽게 골대를 빗나갔다.
전반 33분 배기종의 크로스를 이어받은 김현의 슈팅을 '45세 백전노장'이 두손으로 막아냈다. 절친 노상래 감독에게 데뷔전 승리를 지켜내려는 김병지의 슈퍼세이브는 눈부셨다. 파도타기 응원을 하던 만원관중이 뜨겁게 환호했다. 전반 40분 이후 다시 전남에게 찬스가 찾아왔다. 이종호와 김영욱이 왼쪽 측면에서 활발하게 전반 42분 현영민의 프리킥이 골키퍼 김호준의 손을 맞은 후 상대 수비를 거쳐 떨궈진 볼을 레안드리뉴가 지체없이 왼발 슈팅로 연결했으나 빗나갔다. 전남 추가시간 현영민의 프리킥에 이은 스테보의 헤딩이 골키퍼의 가슴에 안겼다. 득점없이 전반을 마쳤다.
후반 5분 팽팽하던 균형추가 무너졌다. 제주 수비수 정다훤의 골이 터졌다. 오른쪽 측면에서 송진형에게 패스를 내준 후 박스안으로 파고든 후 다시 패스를 이어받았다. 전남 센터백 2명을 뚫어낸 정다훤의 왼발 슈팅이 골망을 흔들었다. 노상래 감독은 실점 직후 과감한 교체카드를 꺼내들었다. 후반 11분 레안드리뉴 대신 신입 외국인선수 오르샤를 투입했다. 스피드와 테크닉을 갖춘 오르샤가 왼쪽 측면을 휘젓기 시작했다. 후반 11분 후반 14분 오르샤의 중거리슈팅이 크로스바를 살짝 넘겼다. 광양구장에는 홈팬들의 아쉬운 탄성이 흘렀다. 스테보 이종호 오르샤 안용우가 쉴새없이 동점골을 노렸지만, 견고한 제주의 포백라인은 좀처럼 뚫리지 않았다. 후반 25분 전남은 김영욱 대신 '초특급 유망주' 이창민을 투입했다. 경기 직전 노 감독이 '사고 칠 선수'로 지목한 선수다. 후반 33분 오르샤와 이창민이 날카로운 2대1 패스는 인상적이었다.
후반 35분 안용우가 엔드라인으로 흐른 크로스를 필사적으로 살려내며 골문 앞 스테보에게 연결했다. 스테보의 오른발 동점골이 작렬했다 .'전남 불패의 상징' 스테보는 올시즌에도 건재했다. 노상래 감독을 데뷔전 패배에서 구해냈다. 신명난 광양 그라운드엔 다시 파도 응원이 시작됐다. 순식간에 분위기가 전남쪽으로 넘어왔다. 노 감독은 후반 39분 이종호 대신 전현철을 투입하며 내친 김에 역전승까지 노렸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양팀의 '공격축구'에 팬들은 뜨겁게 열광했다.
견우회 '절친 더비' 데뷔전, 두 감독은 승부를 가리지 못했다. 전남의 제주 무승 징크스는 깨지지 않았지만, 골 깊은 제주전 5연패의 사슬을 끊어냈다. 광양=전영지 기자 sky4us@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