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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흥민을 바라보는 차두리의 눈, "아버지도 못 한 것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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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태어난 차두리(35·서울)는 축구를 통해 세상을 배웠다. 분데스리가는 놀이터였다.

아버지 차범근 전 수원 감독(62)의 손에 이끌려 이곳저곳을 다니며 글도 알기 전에 독일 축구를 먼저 경험했다. 아버지가 우상이었다. 차 감독은 분데스리가의 아시아 신화다. 10시즌 동안 308경기에 출전, 98골을 터트렸다. 1980년과 1988년 유럽축구연맹(UEFA)컵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1989년 은퇴했지만 여전히 전설로 남아있다. '차붐'으로 뜨거운 사랑을 받고 있다.

20여년이 흘렀다. 차 감독의 아성에 당당히 도전장을 낸 '신형 엔진'이 탄생했다. 손흥민(23·레버쿠젠)의 기세가 무섭다. 차 감독도 일찍이 그의 출현에 흥분했다.

"언젠가 내 기록을 뛰어넘을 수 있는 가능성과 잠재력이 충분하다. 손흥민의 경기를 보면 가끔 내 모습을 볼 때가 있다. 빠르게 돌파하면서 바로 골로 연결하는 모습을 보면 선수로 뛰던 내 모습을 보는 것 같다. 더 많은 골도 넣을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한다."

현실이 되고 있다. 손흥민은 14일(한국시각) 차 감독이 꽃을 피웠던 레버쿠젠의 바이아레나에서 생애 두 번째 해트트릭을 작성했다. 독일 분데스리가 21라운드 볼프스부르크와의 홈경기(4대5 패)에서 0-3으로 뒤진 후반 12분부터 10분 동안 세 골을 잇따라 뽑아냈다. 손흥민은 2013년 11월, '친정팀' 함부르크를 상대로 생애 첫 해트트릭의 역사를 썼다. 차 감독도 이루지 못한 유럽 빅리그 한국인 첫 해트트릭이었다.

차 감독의 탄성은 두 말할 것도 없다. 또 다른 연결고리인 차두리가 '띠동갑 후배'인 손흥민을 바라보는 눈은 또 다르다. 손흥민이 초등학생 시절 차두리는 2002년 한-일월드컵 4강 신화의 주역으로 환희를 누렸다. 손흥민은 차두리에 대한 호칭은 '형'과 '삼촌'이 공존한다. 지난해 9월 태극마크를 다시 단 차두리는 "예전에는 얼굴을 제대로 쳐다도 못봤다. 아시안컵(카타르·2011년)에선 B팀에서 훈련하면서 징징거리더니…"라며 행복해 했다.

차두리도 대를 이어 분데스리가 무대를 밟았다. 2002년 레버쿠젠으로 이적한 그는 곧바로 빌레펠트로 임대돼 프로생활을 시작했다. 프랑크푸르트와 마인츠, 코블렌츠, 프라이부르크를 거쳐 2010년부터 2012년까지 기성용과 함께 스코틀랜드 셀틱에서 뛰었다. 2012~2013시즌 뒤셀도르프로 이적한 그는 2013년 K리그 FC서울로 다시 둥지를 옮겼다. 차두리는 독일에서 230경기에 출전, 18골을 터트렸다. 공격수에서 수비수로 보직을 변경하며 새로운 활로를 개척했다.

분데스리가의 공통분모와 그동안의 역사, 차두리는 선배로서 손흥민에게 충분히 조언할 자격이 있다. 그는 16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아시아챔피언스리그(ACL) 플레이오프 공식기자회견에 참석했다. 서울은 17일 오후 7시30분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하노이 T&T(베트남)와 격돌한다.

차두리는 "나보다 더 훌륭한 선수에게 조언은 웃긴다"며 미소를 지었다. 또 "흥민이는 굉장히 빠르게 발전하고 있는 것이 눈에 보인다. 해트트릭은 아버지도 못한 것"이라며 칭찬했다. 조언 대신 바람을 피력했다. "흥민이는 대표팀에서도 어느 정도 가치가 있는 선수인지를 증명해 보이고 있다. 어디까지 성장할 지는 누구도 알 수 없다. 메시, 호날두급으로 성장해서 전세게 어디에서도 이름만 들어도 아는 선수가 됐으면 좋겠다."

손흥민은 또 넘어야 할 고개가 있다. 그는 올시즌 14골을 기록 중이다. 한국인 한 시즌 최다골 역시 차 감독이 보유하고 있다. 차 감독은 1985~1986시즌 레버쿠젠에서 19골(정규리그 17골, 포칼컵 2골)을 터트렸다. "흥민이는 노력하는 선수다. 얻고자 하는 성격도 강하다. 앞으로 더 발전할 것으로 본다. 다만 3골을 넣었다고 안주하지 말았으면 한다. 그 경기에서 상대는 4골을 넣은 선수가 있었다." 애정이 담긴 채찍이었다.

차두리는 2015년을 끝으로 은퇴한다. 마지막 시즌, 하노이와의 ACL 플레이오프를 통해 첫 발을 뗀다. 차두리는 "마지막 시즌이기 때문에 좋은 선수로 기억되고 싶은 것이 내 바람이다. 마무리가 좋아야 많은 사람들에게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차두리는 지는 해다. 손흥민은 뜨는 해다. 세월을 되돌릴 수 없지만 후배를 바라보는 눈빛에는 뜨거운 정이 흘렀다. 김성원 기자 newsme@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