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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亞컵]차두리는 '마지막', 슈틸리케는 '마지막의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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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2월 제주 전지훈련에선 다소 냉정한 모습이었다.

"이번 전지훈련 참가가 차두리에게 아시안컵 출전의 보증수표는 아니다. 차두리 역시 다른 선수들과 마찬가지로 아시안컵에서 대표팀을 위해 뛰어줄 수 있다는 점을 증명해야 한다." 그러면서도 "그가 이번 전훈을 통해 아시안컵에서 명예롭게 은퇴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했으면 한다"고 했다. 이미 깊은 정이 들어있었다.

29일(이하 한국시각) 호주 시드니의 레이카르트 오발. 울리 슈틸리케 A대표팀 감독(61)은 차두리(35·서울)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그리고 개별 면담을 가졌다. 차두리를 경기장 한가운데로 데리고 가 한참 동안 대화를 나눴다. 둘의 대화 내용은 공개되지 않았다. 그러나 어느 정도 짐작이 가능하다. 호주전에 대한 전략과 태극마크를 반납할 시간이 다가오는 차두리에 대한 소회를 듣는 시간이었을 것이다. 슈틸리케 감독과 차두리는 독일어로 자유롭게 의사소통하고 감정도 공유할 수 있는 사이다.

차두리의 화두는 '마지막'이다. 반전은 없다. 2015년 호주아시안컵이 막을 내리면 예정대로 태극마크를 반납할 전망이다. 팬들은 원성이 높다. 아직 충분히 더 뛸 수 있는 것 같은데 왜 벌써 은퇴하냐는 얘기다. "고참은 경기력이 안되면 결국 팀에는 짐이다. 100%의 경기력을 발휘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 차두리의 소신이다. 경기력은 아직 충분하다. 그래서 팬들도 아쉬워하고 있다. 선발이든, 교체든 제 몫 이상을 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22일 우즈베키스탄과의 8강전에선 60m 폭풍 드리블로 또 다시 '이슈메이커'가 됐다. 다만, 차두리에게 중요한건 회복이다. 90분을 뛰어도, 120분을 뛰어도 자고 나면 다음 날 쌩쌩하던 때와 다르다. 그나마 다행인건 팬들의 높은 관심 속에서 태극마크를 내려놓을 수 있다는 점이다.

슈틸리케 감독의 화두는 '마지막의 시작'이다. 대표팀 관계자는 "슈틸리케 감독은 한국대표팀을 자신의 지도자 인생의 종착역으로 생각하고 있으신 것 같다"며 귀띔했다. 슈틸리케 감독도 26일 이라크전을 앞두고 가진 공식 기자회견에서 "내 축구인생의 커리어로 봤을 때 말년"이라고 말했다. 이번 아시안컵은 지난해 10월 A대표팀 지휘봉을 잡고 치르는 첫 번째 메이저대회지만, 마지막을 위한 시작이기도 한 셈이다.

한국은 슈틸리케 감독에게 '도전'을 원했다. 2014년 브라질월드컵의 아픔을 씻어줄 '해결사'가 되어주길 바랐다. 슈틸리케 감독의 성격상 거부하지 않았다. 쉽지 않은 도전이지만, 조금씩 변화되는 모습에 흐뭇하기만 하다. 젊지만, 경험이 풍부한 선수들을 발탁하고 있다. 슈틸리케 감독은 고정된 틀 안에 갖혀있는 선수들의 축구 사고를 유연하게 만들어주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렇다고 절대 자신이 돋보이긴 싫어한다. 주인공은 선수라는 신념이 강하다.

마지막을 코앞에 둔 차두리, 마지막의 시작인 슈틸리케 감독. 둘의 마음이 통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시드니(호주)=김진회기자 manu35@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