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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亞컵]'Again 1960' 55년만에 우승 문앞에 선 슈틸리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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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틸리케호의 태극전사들이 55년만의 우승에 도전한다. 55년전 전쟁의 폐허, 격변의 시대에 사력을 다해 우승컵을 들어올린 투혼의 선배들은 이제 백발 성성한 80대 노인이 됐다. 이미 세상을 떠난 선배들도 있다. 우승까지 가는 길은 반세기가 넘게 걸렸다. 이제 남은 건 단 한경기다. 31일 오후 6시 호주 시드니 호주스타디움에서 호주아시안컵 한국과 호주의 결승전, 운명의 일전이 펼쳐진다. '온고지신', 55년전 대선배들의 치열했던 어제를 돌아본다. 그리고 아시아의 중심에 다시 선 한국축구의 오늘을 노래한다. 오래전 그날, 그라운드를 붉은빛으로 물들인 선배들의 투혼은 시드니 태극전사들의 가슴속에도 면면히 흐르고 있다.

▶1956년: 전쟁의 폐허에서 쏘아올린 첫 우승

전쟁의 폐허에서도 축구는 꿈을 꾼다. 대한민국은 홍콩아시안컵 초대 챔피언이다. 한국전쟁 직후의 폐허에서 일으킨 기적같은 쾌거였다. 축구협회의 재정은 열악했다. 9월6~15일까지 홍콩스타디움에서 열리는 대회에 갈 비행기 티켓값도 변통하지 못했다. 대한항공 전신인 KNA에 사정해 비행기 외상 티켓을 끊었다. 일단 타이페이까지 갔다. 아시안컵 동부지역 예선 2차전 대만과의 원정전을 치러야 했다. 대만에 패하면 그길로 귀국하고, 이기면 대만축구협회와 협상해 친선경기를 유치, 그 입장수입으로 비행기값을 충당할 계획이었다. 9월2일 대만전에서 2대1로 승리했다. 예정대로 친선경기를 하기로 했다. 그러나 천재지변이 닥쳤다. 이틀째 쏟아지는 폭우 때문에 경기가 전격 취소됐다. 6일 새벽 1시, 한국선수단은 또다시 외상 비행기에 올랐다. 2시간이나 연착된 비행기를 타고 홍콩공항에 도착한 시각은 오전 7시, 홍콩과의 아시안컵 첫 경기는 이날 오후 2시였다. 눈도 붙이지 못한 채 '비몽사몽' 홍콩스타디움에 섰다. 파김치처럼 늘어진 몸은 푹푹 내리쬐는 햇볕에 힘을 쓰지 못했다. 전반에만 2골을 허용했다.절망적이었다. 4개팀이 풀리그로 다투는 상황에서 단 1패만 기록해도 우승은 물 건너간 상황, 후반 시작과 함께 거짓말처럼 소낙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조악한 염색의 붉은 유니폼에서 염료가 녹아내려 핏빛 빗물이 뚝뚝 떨어졌다. 빗줄기에 태극전사들의 투혼이 살아나기 시작했다. 2골을 몰아치며 무승부를 기록했다. 이스라엘에 2대1, 베트남에게 5대3으로 승리한 대한민국은 당당히 초대 챔피언 트로피를 들어올렸다.

▶1960년 격변의 시기에 쏘아올린 두번째 우승

격동의 시기에도 축구는 계속된다. 4·19 의거로 나라안이 어수선한 시기, 축구는 희망이었다. 안방에서 열린 아시안컵에서 야심차게 2연패에 도전했다. 비행기값이 없어 선수숫자를 최소화했던 4년전과는 달랐다. 10월12일 서울 효창구장 개장과 함께 경평OB전이 열렸다. 효창구장 개장 기념식 이틀뒤인 10월14일 제2회 서울아시안컵이 막을 올렸다. 디펜딩챔피언이자 개최국인 한국은 자동출전권을 받았다. 이스라엘 대만 베트남 등 4개국이 출전했다. 2만명을 수용하는 스타디움엔 10만 구름관중에 몰렸다. 뜨거운 안방 응원 속에 한국은 승승장구했다. 베트남을 5대1로, 이스라엘을 3대0으로 대만을 1대0으로 꺾으며 3연승, 우월하고 절대적인 2연패를 달성했다. 당시 4골로 득점왕에 올랐던 고 조윤옥 선생의 아들 조준헌씨는 현재 대한축구협회 홍보팀장으로 시드니 현장의 태극전사들을 지원하고 있다. 55년전 아버지의 투혼을 전하고 있다.

▶2015년, 55년만에 세번째 우승 문앞에 서다

반세기의 한을 풀기 위해 23인의 태극전사들이 최후의 일전에 나선다. 결승전에서 '개최국' 호주를 넘어서면 55년만에 아시안컵 우승 트로피가 초대 우승팀인 한국의 품으로 돌아온다. 지난 10일 오만과의 조별리그 1차전부터 시작된 슈틸리케호의 여정은 쉽지 않았다. 부상, 감기 악재, 졸전 등 롤러코스터를 탔다. 이청용(볼턴)이 1차전에서 정강이 부상으로 대표팀에서 하차했다. 슈틸리케호를 급습한 감기 몸살, 설사 증세에 손흥민(레버쿠젠) 구자철(마인츠) 김진현(세레소 오사카)가 쓰러졌다. 슈틸리케 감독은 결단을 내렸다. 컨디션이 좋지 않은 선수들을 아예 빼버리고, 오만전 베스트 11에서 무려 7명을 교체했다. 쿠웨이트에 1대0으로 승리를 챙겼지만 졸전에 비판이 쏟아졌다. "우리는 더이상 우승후보가 아니다." 슈틸리케 감독이 처음으로 쓴소리를 했다. 이런 경기력으로는 우승에 도전할 수 없다는 경고이자, 선수들의 투지를 일깨우려는 노림수였다.

감독의 울림에 선수들이 이를 악물었다. 1.5군을 내세운 호주를 상대로 조별리그 최종전에서 1대0으로 승리했다. A조 1위의 '프리미엄'을 누리게 됐다. 조별리그 1위를 예상한 '개최국' 호주의 우승 시나리오를 그대로 따랐다. 경기 일정에서 상대팀보다 하루 더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이점을 누렸다.

호주전 승리가 반전을 불러왔다. 바닥을 찍었던 경기력이 상승곡선을 그리기 시작했다. 우즈베키스탄과의 8강전에서 부진했던 손흥민이 2골을 넣으며 날아올랐다. 4강전에서도 2대0의 통쾌한 승리를 거두며 결승행에 성공했다. 각본없는 드라마엔 스토리도 넘쳐났다. '맏형' 차두리(FC서울)의 '폭풍질주'에 온 국민이 미소 지었다. 축구팬들의 답답했던 속이 뻥 뚫렸다. '군데렐라' 이정협(상주)의 선발에 대해 모두가 고개를 갸웃할 때 슈틸리케 감독은 이정협을 무한신뢰했다. "잘하든 못하든 내가 책임진다. 걱정마라"며 믿음을 심어줬다. 이정협은 2골을 넣으며 아시안컵의 '샛별'로 떠올랐다. 김주영(상하이 둥야)은 '제2의 차두리'로 변신해 대표팀에 웃음 바이러스를 전파했다. '삭발 효과'였다. 이청용과 구자철의 부상 낙마에 함께 울었다.

지난해 10월 "새로운 여행이 시작됐다"며 출항한 슈틸리케호의 첫 여정이 이제 1차 종착역에 다다랐다. 1988년 이후 27년만에 밟은 아시안컵 결승 무대다. "선수들이 가진 100%를 경기장에서 보여준다면 우리는 1월 31일까지 살아남을 수 있다." 그의 말대로다. 1월 31일이 다가왔다.

한국전쟁의 아픔과, 정치적 격변기의 역경속에서도 축구로 희망을 썼던 선배들의 길이 후배들을 통해 다시 열린다. 배고프고 힘겹던 시절 대한민국을 아시아 정상에 우뚝 세웠던 선배들의 투혼을 기억한다. 오늘의 태극전사들은 더 이상 헝그리하지 않다. 그러나 우승을 향한 배고픔, 열정의 온도는 그날과 다르지 않다. 거침없고 당당하고 유쾌한 2015년판 우승, 슈틸리케호는 반세기만의 해피엔딩을 꿈꾸고 있다. 전영지 기자 , 하성룡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