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견기업에서 은퇴한 박모씨(54)는 1년여의 준비기간을 거쳐 지난해 초 서울 강서구 화곡동에 돼지곱창 집을 열었다.
99.9㎡(30평) 규모의 가게는 빌라 밀집지역에 위치해 있었으며, 권리금 1500만원과 보증금 5000만원에 월세 170만원의 임대 조건이었다. 개업 초기에는 지인들이 가게를 찾아줘 그럭저럭 수지를 맞췄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손님이 줄어들기 시작, 적자의 늪에서 허덕이다가 결국 1년도 버티지 못한 채 지난해 말 가게를 다른 사람에게 넘기고 철수했다. 나름대로 고객들로부터 돼지곱창이 맛있다는 평가도 들었다. 하지만 박씨의 가게는 시쳇말로 파리 날리기 일쑤였다.
박씨의 실패원인은 무엇일까. 입지선정이 잘못되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견해다. 돼지곱창은 오피스가에 위치해야 수지타산을 맞출 수 있다는 것이다. 돼지곱창은 직장인들이 퇴근 무렵 소주 한잔 기울이며 먹는 메뉴라는 얘기다. 주택가에서 가족 단위로 돼지곱창 집을 찾아 소주잔을 기울이는 모습은 쉽게 찾아볼 수 없다.
직장에서 은퇴한 뒤 자영업에 뛰어드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한 해 평균 60만개의 가게가 새로 생기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지난해 10월 중소기업청이 국회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자영업자들의 창업 5년 후 생존율은 숙박·음식점 17.7%, 도소매업은 26.7%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선종필 상가뉴스레이다 대표는 "자영업의 성공조건은 일반적으로 입지가 60%, 가게 주인의 역할이 40%라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선 대표의 조언을 토대로 업종별 적정한 입지조건을 점검해 봤다.
▶분식 집=주변에 학교와 학원가, 아파트단지, 은행, 대형마트 등 여러 상권이 겹쳐있는 것이 유리하다.
하지만 무조건 유동인구가 많다고 해서 장사가 될 것이라고 생각해서는 곤란하다. 오히려 유동인구는 적지만 학생들의 등·하교길 동선이나 원룸촌, 대학가 자취생 밀집지역이 높은 수익을 올릴 수 있다. 개업 전 경쟁업소의 음식 단가와 이용하는 고객 연령대를 조사해 볼 필요가 있다. 경쟁업소보다 유리한 곳에 위치해야 승산이 있다. 메뉴 단가가 낮은 만큼 서울 기준으로 월 임대료가 200만원을 넘어가면 곤란하다.
▶한정식 집=대형 음식점이 몰려있는 먹자골목에 위치하는 것이 좋다. 특히 관광지와 산자락 입지도 괜찮다. 경제사정이 좋지 않은 만큼 상위 5%만을 겨냥, 핵심 상권에서 승부수를 띄워보는 것도 효과적인 전략이 될 수 있다.
또 맛에 자신 있고 고급스러운 디자인으로 장식할 경우 유동인구와 상주인구가 많은 지역이 아니더라도 창업하기에 무리가 없을 것이다. 경쟁업체보다 다양한 룸을 인원수별로 골고루 갖출 수 있어야 한다. 케이스에 따라 다르겠지만 보통 월 임대료가 400만원을 넘지 않는 것이 좋다.
▶치킨 집=역세권 유동인구 밀집지역, 아파트 상권 등이 적합한 지역이다. 그런데 치킨 집은 워낙 숫자가 많은 만큼 해당지역에 경쟁업체가 얼마나 있는지도 진지하게 고려해야 한다. 전국에 치킨 집만 4만개가 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치킨 집의 성공여부는 80~90%가 입지에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일반적으로 월 임대료가 200만원을 넘지 않는 것이 좋다.
▶학원=학원 입지로는 세대수가 많은 아파트 단지 주변, 학교가 두서너 군데 모여 있는 상권이 유리하다. 학생들의 귀가 길을 감안해 지하철과 버스 정류장이 도보 10분 이내에 위치해야 경쟁력이 있다. 구체적으로 학원 개원 예정 인근지역에 가르치고자 하는 연령대의 학생들이 어느 정도 있는가도 꼼꼼히 따져보아야 한다. 주변 5㎞ 이내에 몇 개의 학교가 위치해 있는가도 점검해 보아야 한다. 165㎡(50평) 기준 임대료는 400만원을 넘지 않는 것이 좋다.
▶의류매장=패션상권과 백화점 부근, 횡단보도 옆 상가 등이 괜찮은 편이다. 특히 패션상권이 이뤄진 곳이 최상이라고 하겠다.
유동인구가 많은 쇼핑가라 할지라도 출퇴근 하는 직장인들이 많다면 피하는 것이 좋다. 바쁘게 이동해야 하므로 의류에 신경을 쓰기 힘들기 때문이다. 판매할 의류의 타깃을 분명히 하고 의류 스타일에서 경쟁업체와 차별화 포인트를 개발하는 것도 필수다.
▶부동산 중개업소=투자자가 많은 빌딩주변 사무실, 대규모 상가, 유흥가,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유리하다.
또한 중개업은 서비스업과 유통업을 겸한 성격이 강하므로 인근 고객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장소에 위치해야 경쟁력이 있다. 중개업소 주변으로 지나다니는 행인들이 점포의 간판을 잘 볼 수 있어야 한다. 유동인구 보다는 상주인구에 중점을 두는 것이 좋다. 중개업소가 밀집해 있다고 해서 지나치게 이를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신규 고객수요를 창출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기존업체보다 더 좋은 시설과 전문화된 서비스가 필요하다. 서울지역 기준으로 임대료가 월 300만원을 넘기지 않는 것이 좋다. 송진현 기자 jhsong@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