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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회의 슈틸리케호 IN&OUT]외로운 정성룡? 그의 亞컵은 끝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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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일 호주 시드니의 날씨는 변덕이 심하네요. 강한 바람을 동반한 비가 오전부터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숙소에서 6~7㎞ 떨어진 도심은 자욱한 안개로 뒤덮여 스산한 분위기가 연출했습니다. 공교롭게도 한국 대표팀의 경기가 열리는 날만 되면 이렇게 날씨가 궂은지 알 수가 없네요.

비가 내리면 아무래도 몸이 쳐지기 마련인데요. 슈틸리케호에는 날씨만이라도 맑았으면 하는 선수가 있습니다. 바로 골키퍼 정성룡입니다. 태극전사들과 생활하고 있지만, 마음이 허전할 겁니다. 23명의 태극전사 중 유일하게 출전 기회를 얻지 못했죠. 특수 포지션이라 그렇습니다. 먼저 출전 기회를 잡은 선수가 선전을 펼치고 있을 때 쉽게 바꿀 수 없는 포지션이 골키퍼입니다.

사연도 있습니다. 이번 달 초 호주 시드니 전지훈련 초반 다리 근육통으로 막판 주전경쟁을 펼치지 못한 것이 아쉬웠습니다. 김봉수 대표팀 코치의 얘기로는 정성룡은 김진현 김승규와 기량차가 없다고 합니다. 울리 슈틸리케 감독도 대회에 돌입하기 직전까지도 주전 수문장을 결정하지 못했을 정도였죠. 그래서 더 아쉬움이 클 겁니다. 5일부터 부상에서 벗어나 정상 훈련을 소화했죠.

경기 당일이 되면 정성룡의 마음은 더 씁쓸해집니다. 슈틸리케 감독은 결전 전날 베스트 11을 선수들에게 알려주기 때문이죠. 경기 당일 선수들의 얼굴 표정에서 이미 베스트 11을 짐작할 수 있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정성룡은 이 마음을 달래기 위해 경기 당일 오전 항상 홀로 호텔 주변을 걷습니다. 얼마나 뛰고 싶을까요. 그래도 실망한 모습은 절대 내색하지 않는다고 하네요. 자신의 기분 때문에 후배들이 더 눈치를 볼 수 있기 때문이죠. 경기에 출전하는 선수에게 힘을 불어넣어주고, 팀 승리를 묵묵히 응원한다고 합니다. 팀이 무실점으로 승승장구하는 걸로 만족한다고 하네요. 욕심을 조금은 내려놓은 모습인데요.

분위기 메이커 역할도 합니다. 이기기는 했지만 졸전으로 여론의 질타를 받은 쿠웨이트전 이후에도 후배들을 다독였다고 하네요. 이제서야 하는 얘기지만, 지난해 브라질월드컵이 끝나고 귀국하는 비행기에서 SNS를 통해 올린 '퐈이야~' 사건도 비슷했던 상황이었죠. 조별리그 탈락 이후 우울해진 팀 분위기를 반전시키려는 노력이었습니다. 그런데 팬들은 분위기 파악을 못하는 몰지각한 선수로 몰아갔죠. 2010년 남아공월드컵 사상 첫 원정 16강, 2012년 런던올림픽 사상 첫 동메달 신화의 주인공이 인신공격성 비난을 받는 것이 안타까웠습니다. 기량을 떠나 대표팀 음지에서 후배들을 격려해주는 정성룡에게 박수를 보내야 마땅합니다. 그의 아시안컵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시드니(호주)=스포츠2팀 기자 manu35@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