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재덕 한화 단장은 지난해말 김성근 감독(73)을 영입한 이유에 대해 "꼴찌에 이골이 났다"고 했다. 2010년대 들어 지난 5년간 4번이나 최하위를 했다. 2009년까지 합하면 6년간 5차례다. 대전구장은 화를 다스리는 참선도장이 됐고, 팬들은 자타공인 '보살팬'으로 불렸다. 마지막 기둥 류현진이 LA다저스로 떠난 뒤 그돈으로 지난해 정근우와 이용규를 FA시장에서 데려왔지만 순위는 바뀌지 않았다. 8팀이 됐든, 9팀이 됐든 맨 밑바닥은 한화였다. 올해는 kt까지 합류해 10팀이 되는데 또 밑장을 깔아주면? 큰 낭패다.
체질개선을 위해 고민끝에 모셔온 김성근 감독은 팀 문화를 바꾸고 있다. 더 던지고, 더 치고, 더 달린다. 노 감독은 독기서린 눈빛과 하고자 하는 열망을 보겠다고 했다. 일본 고치 전지훈련장 점심은 도시락과 우동일 때가 많다. 그나마 식사시간은 20분이다. 넉넉하게 식사할 수 있는 나머지 40분은 훈련시간이라기 보다 한화 선수단 스스로에게 보내는 메시지일 것이다. '우리는 변할 것이다.'
한화팬 뿐만 아니라 기자도 보고싶고, 많은 야구팬들도 흥미롭다. 꼴찌에서 벗어나 위로 치고 올라가는 한화를. 야구라는 승부의 세계를 넘어 어찌보면 세상살아가는 이치라는 생각도 든다. 요즘은 개천에서 용이 나는 시대가 아니라고들 입을 모은다.
1970년대, 80년대, 90년대까지만해도 어려운 환경을 뚫고 꿈을 이루는 이들이 더 많았다. 그들이 전하는 감동은 눈시울을 뜨겁게 하고 '그래 나도 한번 도전해 보리라'는 마음을 먹게 했다. 하지만 세상은 빠르게 변했고 노력으로 깨기 힘든 사회구조와 경제구조 등은 고착화됐다. 대다수 부유층은 부를 대물림하고, 대다수 가난한 이들은 원치않는 가난을 세습한다. 웃는 1%와 우는 99%는 자본주의의 슬픈 자화상이라는 말도 한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야구, 스포츠의 공정함이다. 이곳 역시 머니게임의 영향력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순 없지만 그렇다고 9명이 뛰는 그라운드에 10명이 난입하거나 방망이를 두 자루 쥐고 타석에 들어서진 않는다.
늘 지는데 익숙해졌던 한화 선수들은 손에 붕대를 칭칭 감고 날아오르기 위해 안간힘을 쏟고 있다. 일흔이 넘은 노 감독은 젊은 사람들도 숨이 턱턱 막히는 500개의 펑고(연습 타구)를 날리며 의지를 불태우고 있다. 진흙 속에 파묻힌 진주를 찾기 위해 칠흑같은 어둠속에서 쉴새없이 팔을 휘젓는다.
노력해서 안되는 것도 있고, 간절히 바란다고 해서 바뀌지 않는 것도 있다지만 이를 뛰어넘는 기적같은 신화, 감동은 스포츠의 전유물이다. 정점을 찍고 내려오는 듯한 배영수 권혁 임경완 등의 인간승리도 좋고, 더 강해진 김태균을 보는 일도 설렌다.
아시안컵 축구가 화제다. 27년만의 결승행에는 감동스토리가 많다. 모두가 안된다고 했지만 육군 상병 이정협을 최전방 공격수로 발탁한 슈틸리케 감독의 역발상. 30대 중반의 나이에 그라운드를 질주하는 차두리, 단짝 이청용의 부상을 훌륭히 메우는 오뚝이 같은 기성용의 기민함까지. 이 모든 것이 우리 사는 세상에선 지극히 보기 힘들다. 역발상은 손가락질 받기 쉽고, 나이들면 능력과 상관없이 퇴물취급 받고, 한번 넘어지면 일어서기 어렵지 않나. 프로야구 개막, 봄이 기다려진다. 스포츠1팀장 jhpark@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