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 경기 파격적인 베스트 11이었다.
울리 슈티릴케 A대표팀 감독은 10일(이하 한국시각) 오만과의 조별리그 1차전에 자신이 이미 준비했던 베스트 11을 내놓았다. 당시 원톱과 섀도 스트라이커만 예상이 빗나갔다. 이근호(30·엘 자이시) 대신 조영철(26·카타르SC)이 선발 출전 기회를 잡았다. 4일 사우디와의 평가전이 큰 영향을 끼쳤다. 섀도 공격수에는 남태희(24·레퀴야) 대신 경기력이 떨어져 있었던 구자철(26·마인츠)이 나선 것이 파격적이었다.
고비가 찾아왔다. 13일 쿠웨이트와의 2차전을 앞두고였다. 도전을 택했다. 어쩔 수 없었다. 부상과 감기란 변수가 슈틸리케호를 반토막냈다. 오만전 이후 이청용(27·볼턴) 김창수(30·가시와) 조영철 김주영(27·상하이 둥야)이 부상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심한 감기 몸살에 걸린 선수들도 나타났다. 손흥민(23·레버쿠젠) 구자철(26·마인츠) 김진현(28·세레소 오사카)이 고열과 설사에 시달렸다. 변덕스런 캔버라 날씨와 경기를 빗속에서 치른 탓에 대부분의 선수들의 컨디션은 정상이 아니었다. 한국영(25·카타르SC) 정성룡(30·수원) 정도만 정상 컨디션을 유지했을 뿐이었다.
선수 운용에 난항을 겪은 슈틸리케 감독은 베스트 11에 대폭 변화를 줄 수밖에 없었다. '파격'이었다. 다행히 쿠웨이트를 꺾고 일찌감치 8강행을 결정지었지만, 환하게 웃을 수 없었다. 졸전이었다. 호주전에는 좋은 경기력을 보여야 했다. 그러기 위해선 선수들의 빠른 회복이 필요했다.
숨통이 트였다. 17일 호주전을 앞두고 선수들이 제 컨디션을 찾았다. 그러나 슈틸리케 감독은 파격 행보를 계속 이어갔다. 원톱에 이정협(24·상주)를 세웠다. 조커 자원으로만 평가되던 이정협의 선발 출전은 분명 의외였다. 오른정강이 부근 실금 부상으로 낙마한 이청용(27·볼턴)의 빈 자리는 K리거 한교원(25·전북)이 맡았다. 멀티 능력을 갖춘 남태희가 주 포지션인 공격형 미드필더 대신 오른쪽 측면 공격수로 나설 것으로 예상됐지만, 빗나갔다.
이제 더 이상의 파격은 없다. 골키퍼 정성룡(30·수원)만 제외하고, 22명이 모두 활용됐다. 누가 나서도 잘 해줄 것이라는 믿음이 생겼다. 이번 대회 유독 '원팀'을 강도했던 슈틸리케 감독의 전략이 맞아 떨어진 것이다. "이 대회에서 우승하기 위해선 11명만 가지고 우승할 수 있지 않다. 23명을 모두 활용해야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던 슈틸리케 감독이었다.
우즈벡과의 8강전이 이틀 앞으로 다가왔다. 이 경기부터 토너먼트 방식이 적용된다. 지면 곧바로 짐을 싸야 한다. 이제 정공법이 필요하다. 정해진 베스트 11이 없어 가용한 모든 선수들의 정신력을 끌어올리고, 경쟁을 더 치열하게 유지할 수 있는 장점은 있었다. 그러나 토너먼트에서 좀 더 탄탄한 조직력과 유기적인 호흡을 보이려면, 베스트 11 대폭 변화는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안정환 MBC축구해설위원도 "지금부터는 무조건 매 경기 베스트 멤버가 출전해야 한다"고 말했다.
슈틸리케 감독의 머릿 속에는 어떤 그림이 그려지고 있을까.
멜버른(호주)=김진회기자 manu35@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