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의 유격수가 돼야죠.", "에이 메이저리그는 간다고 해야지."
농담처럼 시작했던 얘기가 현실이 됐다. 강정호가 한국 프로야구 출신으로 메이저리그에 직행한 첫 번째 야수가 됐다. 그 뒤에는 강정호의 메이저리그행을 조용하지만 철저하게 뒷바라지한 넥센 히어로즈의 노력이 있었다.
강정호가 수년 전 인터뷰에서 "최고의 유격수가 되겠다"는 말을 하자, 넥센 구단 관계자는 그에게 그걸로 되겠냐며 농담처럼 '메이저리그' 얘기를 꺼냈다. 어렸을 적부터 아버지와 함께 꿨던 메이저리그 진출의 꿈, 아마 이때가 빅리그 진출에 대한 구체적인 생각을 갖게 된 출발점이 아니었을까.
넥센이 본격적으로 강정호의 꿈을 후원하기 시작한 건 지난 201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강정호의 해외진출 프로젝트가 단기간에 진행된 것은 아니다. 해외진출 가능 시점에 맞춰 준비를 했다.
넥센은 2013년 미국 현지에서 에이전트들을 추렸다. 당시 한국 프로야구에서 메이저리그로 직행한 선수는 류현진이 유일했다. 게다가 류현진은 투수였다. 야수로는 쉽지 않은 도전, 넥센은 각 에이전트들의 장단점을 조사하면서 강정호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에이전트 최종 선택은 강정호의 몫이었다. 구단이 준비한 자료를 건네주며 설명을 했고, 강정호는 직접 앨런 네로와 옥타곤 월드와이드사를 골랐다. 이 시기가 2013년 말이었다.
구단 관계자는 당시를 회상하며 "메이저리그 진출이 전부가 아니었다. 계약 이후에도 선수의 현지 적응을 도울 만한 지, 인간적인 면모를 살펴보기도 했다"며 네로와 옥타곤의 장점을 설명했다. 예를 들면, 스캇 보라스 같은 에이전트가 더 좋은 계약조건을 이끌어낼 수는 있어도, 그 이후까지 생각해야 했다.
사실 지난해 내내 에이전트사의 노력이 있었다. 애리조나 스프링캠프에 메이저리그 스카우트들이 와서 강정호를 관찰하기 시작한 것도 네로의 힘이 컸다. 사전작업을 충실히 했기에 강정호에 대한 관심이 생성됐고, 시즌 내내 목동구장은 메이저리그 스카우트들의 발길로 끊이지 않았다.
강정호의 새 소속팀, 피츠버그 파이어리츠는 그 중 하나였다. 어느 팀보다 열심히 강정호를 관찰했지만, 겉으로 크게 드러나지는 않았다. 복수의 스카우트들이 입국해 강정호를 크로스체크했고, 플레이오프 때까지 강정호의 모습을 확인했다. 사실 넥센 측에선 피츠버그의 포스팅 승리 소식에 놀라기도 했지만, 곱씹어보니 그럴 만했다는 생각이었다.
넥센은 여러모로 피츠버그와 닮은 팀이다. 두 팀 모두 빅마켓 구단이 아니고, 최근 들어 포스트시즌에 나가는 '컨텐더'팀으로 성장했다. 적은 비용으로 팀을 효과적으로 운영하려는, 수뇌부의 판단력 또한 비슷하다.
사실 넥센은 강정호의 포스팅을 두고, 걱정도 많았다. 500만2015달러(약 54억원)은 애매한 금액이었다. 넥센이 이 돈을 이적료 명목으로 받아서가 아니었다. 강정호 본인에게 얼마나 기회가 갈 지 달린 금액이었다. 우려도 있었지만, 에이전트는 '4+1'년 최대 1200만달러(약 130억원)에서 1650만달러(약 179억원)라는 계약 조건을 이끌어냈다. 피츠버그가 강정호에게 기회를 줄 수밖에 없는 조건이다.
넥센은 마지막까지 강정호를 돕는다. 이미 처음부터 계약을 마치고 운동할 곳이 없을 강정호를 위해 애리조나 스프링캠프에서 함께 훈련하도록 얘기를 해놨다. 염경엽 감독은 유격수와 3루수에 비해 다소 낯선 2루수 수비 훈련도 직접 도울 생각이다.
강정호는 계약 이후 인터뷰 때마다 '넥센 히어로즈'를 언급했다. 그에게 넥센은 꿈을 현실로 만들어준 곳이다. 이렇게 넥센 히어로즈의 '강정호 프로젝트'는 성공적으로 끝났다. 이젠 '제2, 제3의 강정호를 만들자'는 다음 프로젝트가 기다리고 있다.
이명노 기자 nirvana@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