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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화맨' 권혁, "삼성 만나면, 이 악물고 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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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이요? 마우스피스 물고 던질거에요."

투지와 독기는 묘한 전염성이 있다. 동료의 각오, 지도자의 열정이 들불처럼 선수들 사이에 번져가고 있다. 특히 한 번쯤 소외된 경험을 해본 선수들은 스스로의 가치를 다시 증명해보이겠다는 다짐으로 이를 악물었다. 한화 이글스 고치 스프링캠프의 분위기는 이런 식으로 달아오른다.

이 가운데에서도 좌완투수 권 혁(32)의 다짐과 훈련 몰입도는 단연 독보적이다. 지난해 11월말 FA계약으로 한화에 새 둥지를 튼 권 혁은 불과 2개월 만에 완벽에 가까운 '한화맨'이 돼 있었다. 그리고는 "이 악물고 던져보겠다"며 올 시즌에 대한 독한 각오를 다지고 있다.

권 혁이 이런 의욕을 보이는 데에는 세 가지 이유가 있다. 일단은 김성근(73) 감독의 믿음이다. 김 감독은 일찌감치 권 혁에 대해 "필승계투나 마무리감으로 보고 있다"며 큰 가치를 부여했다. 한화와 계약 후 치른 입단식에서 구체적으로 권 혁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 언급했다. 여기에 덧붙여 "구종을 하나 추가할 필요가 있다"는 말도 했다. 그간 권 혁이라는 투수를 많이 지켜봐왔고, 더 좋은 위력을 갖게 만드는 방법을 생각해왔다는 증거다.

이런 김 감독의 발언은 권 혁의 심장을 뜨겁게 달궜다. 권 혁은 "프로 입단 후 가장 바쁜 12월을 보냈다"면서 개인 훈련에 많은 공을 들였다고 밝혔다. 사이판에서 러닝으로 하체를 다지고, 공을 던지며 1월 스프링캠프에 베스트 컨디션으로 참가할 몸을 만들었다. 체인지업 계열의 비밀무기도 착실히 준비했다. 효과는 탁월했다. 벌써부터 위력적인 공을 뿌리고 있다. 김 감독이 "(한창 좋을 때의)김광현을 보는 듯 하다"며 권 혁에 대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권 혁을 움직인 두 번째 이유는 바로 '가족'이다. 만삭이었던 아내가 며칠 전 건강한 딸을 출산했다. 덕분에 권 혁은 세 아이의 아빠가 됐다. 가장으로서의 책임감이 더욱 무거워진 것. 고치 스프링캠프에서 만난 권 혁은 "아내가 만삭이었는데, 12월에 훈련하느라 잘 챙겨주지 못했다"면서 "셋째 아이의 태명이 '별이'였다. 그런데 아직 제대로 된 이름도 지어주지 못했다. 그래도 아내와 아이들을 생각하면 더 열심히 운동하게 된다"며 가족에 대한 애뜻한 마음이 강한 집중력의 원동력이라고 밝혔다.

마지막 이유는 바로 '명예회복에 대한 오기'다. 권 혁은 2002년 1차지명으로 삼성에 입단한 뒤 지난해까지 12년간 '삼성맨'으로 살았다. 한때 팀의 가장 위력적인 좌완 불펜으로 각광받았던 권 혁이다. 2000년대를 휘어잡은 '삼성 왕조'가 구축되는데 있어 권 혁이 기여한 부분은 결코 적지 않다.

하지만 권 혁은 지난해 FA 계약 협상 과정에서 삼성과 결별하고 말았다. 최근 몇 년간 허리 통증과 제구력 및 구위 저하 등으로 필승조에서 추격조로 밀려난 권 혁에 대해 삼성은 좋은 평가를 내리지 않았다. 냉정한 프로 구단의 세계에서는 얼마든지 벌어질 수 있는 일이다.

그래도 12년간 몸담았던 친정팀이다. 삼성에 대한 애정이 컸던만큼 서운한 마음도 분명히 있다. 그렇다고해서 불필요한 투정이나 뒷말을 하는 것도 프로답지 못하다. 권 혁은 "실력으로 내 가치를 입증하겠다"고 다짐하고 있다. 가장 좋은 건 삼성과의 경기에서 더욱 강력한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다. 권 혁은 "감정이 남아 있는 건 아니다. 그래도 올해 삼성과 만나게 되면 더 잘 던지고 싶다. 마우스피스를 물고 힘껏 던지겠다"고 밝혔다. 이를 꽉 깨물고, 자신의 참모습을 옛 소속팀에 확실하게 보여주겠다는 각오다. 사나이의 오기, 날이 시퍼렇게 선 칼과 같다.

고치(일본 고치현)=이원만 기자 wma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