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5년 전의 일이다.
2010년 3월 5일이었다. 유럽 생활이 1년도 안된 '쌍용'의 햇병아리 시절이었다. 기성용(26·스완지시티)은 당시 스코틀랜드 셀틱, 이청용(27·볼턴)은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를 누빌 때였다. 2010년 남아공월드컵을 앞둔 둘은 런던에서 벌어진 아프리카 축구 최강 코트디부아르와의 평가전(2대0 승) 후 영국에서 처음으로 오붓한 시간을 가졌다.
둘은 FC서울에서 한솥밥을 먹다 2009년 사이좋게 해외 진출에 성공했다. 이청용은 8월, 기성용은 12월 제2의 축구 인생을 시작했다. 볼턴과 셀틱의 연고지인 글래스고는 그리 멀지 않다. 하지만 서로 바쁘다는 이유로 한 번도 만나지 못했다. 2~3일에 한 번꼴로 전화로 안부를 교환했을 뿐이었다.
회포를 풀 기회는 코트디부아르전 직후 우연히 찾아왔다. 둘의 여정은 달랐다. 기성용은 항공편을 통해 런던에서 글래스고로 돌아갈 예정이었다. 반면 이청용은 몰고 간 차가 이동 수단이었다. 그러나 기성용이 하루 휴가를 받으면서 '1박2일 데이트'가 성사됐다. 런던에서 볼턴으로 가는 길에선 번갈아 운전대를 잡았다.
기자는 '불청객'으로 둘과 점심식사를 함께 했다. 대표팀이 화두였다. 둘은 당시 한 학번 아래의 이승렬과 김보경이 가세하면서 막내 신분을 탈출했을 때였다. "이제 버스를 탄 후 인원 점검을 안 해도 된다." 둘의 순박한 미소는 여전히 뇌리에 남아있다. 버스 출발전 인원 체크는 막내의 몫인데 그동안 대표팀에서는 둘이 번갈아 했다.
어린 나이지만 둘은 대표팀의 당당한 주연이었다. '캡틴' 박지성(당시 맨유)의 좌우측에는 늘 '쌍용'이 있었다. 남아공월드컵에서 사상 첫 월드컵 원정 16강 진출을 달성하며 한국 축구의 미래로 자리잡았다. 2011년 카타르아시안컵에서도 둘의 고공질주는 계속됐다. 그리고 박지성이 국가대표에서 은퇴했다.
새로운 시대, 기성용과 이청용이 한국 축구의 화두로 떠올랐다. 둘의 길은 탄탄대로처럼 보였다. 하지만 세상의 시샘에 둘은 혹독한 시련을 겪었다. 이청용은 2011년 7월 31일 웨일스 뉴포트카운티와의 프리시즌에서 오른 정강이 하단 3분의 1지점의 경골과 비골이 골절됐다. 선수 생명이 흔들렸다. 다행히 2012년 5월 9개월여 만에 복귀했지만 운명은 가혹했다. 이청용의 공백에 아파했던 볼턴은 끝내 2부로 강등됐다. 부상 후유증은 꽤 길었다. 2013년 제자리를 잡는 듯 했지만 지난해 브라질월드컵에서 부진했다.
기성용은 2012년 런던올림픽에서 동메달을 선물하며 뜨겁게 달아올랐다. 2012년 EPL 스완지시티에 둥지를 틀었다. 그러나 2013년 뜻하지 않은 'SNS 파문'으로 갈기갈기 찢겨졌다. 브라질월드컵의 맹활약으로 논란은 가라앉았지만 16강 진출에 실패하며 웃을 수 없었다.
그렇게 세월이 흘렀고, 2015년 호주아시안컵이 시작됐다. 어느덧 둘이 이끌어가는 대표팀이다. 울리 슈틸리케 감독은 기성용을 주장, 이청용을 부주장에 선임했다. 10일(이하 한국시각) 오만과의 조별리그 1차전(1대0 승)은 '쌍용'을 위한 무대였다. 클래스는 달랐다. 아시아 무대는 좁았다. EPL에서도 90%가 넘는 패싱력을 선보이는 기성용은 오만전에서도 자로잰듯한 패스를 선보였다. 방향, 거리 모두 완벽했다. 정확한 롱패스로 세 차례나 오만의 수비 뒷 공간을 허물었다. 기성용의 오만전 패스 성공률은 96%였다. 날카로운 패스 뿐이 아니었다. 안정된 경기 운영과 조율로 그라운드를 지배했다.
중앙에 기성용이 있다면 측면은 이청용의 세상이었다. 오른쪽 측면에 선 그는 전반 10여분이 흐른 후 본격적인 행보를 시작했다. 왼쪽과 중앙을 넘나드는 창조적인 플레이로 공격을 이끌며 활로를 개척했다. 손흥민(레버쿠젠)과 수시로 포지션을 변경했다. 그가 선 자리가 그의 포지션이었다. 개인기와 스피드, 반박자 빠른 패스가 곁들여 지면서 칼날은 더 예리해졌다.
오만 수비수들이 이청용을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이것이 화였다. 오만의 거친 태클에 쓰러졌다. 수술을 한 오른 정강이를 강타당했다. 그는 후반 32분 교체됐다. 큰 부상은 아닌 것으로 보이지만 보호차원에서 2차전에서 결장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공백은 길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5년 전 둘은 후식으로 '대형 코코아' 하나를 주문해 나눠 마셨다. 그 때의 '앳된' 얼굴은 더 이상 없다. 유부남이 됐고, 듬직한 간판이 그 자리를 채우고 있을 뿐이다.
희로애락과 공생하고 있는 '쌍용'의 성장, 2015년 한국 축구의 오늘이다. 55년 만의 아시안컵 우승 도전은 기성용과 이청용의 발끝에 달렸다. 스포츠 2팀 newsme@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