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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르의 원류를 찾아서. RPG의 전성기 '울티마 VS 위저드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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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 말 PC시장의 지각변동

1980년대 초중반은 PC의 역사에서 '춘추전국시대'에 해당하던 시기였다. 애플, IBM, 코모도어, MSX 등 다양한 회사에서 저마다 다른 규격의 PC가 난립해 시장을 놓고 치열한 경쟁을 벌였다. 경쟁이 치열한 만큼 개발자들도 고민이 많은 시기였다. 이 시기의 소프트웨어는 아예 특정 기종에서만 동작하거나, 5가지 이상의 기종에서 많게는 8가지 이상의 기종을 지원하는 소프트웨어도 있었다. 막 성장하던 PC게임 시장 역시 다양한 기종을 지원하는데 여념이 없었다.

그렇게 1980년대 말에 접어들자 IBM 호환 PC가 대세를 이루었다. 소수의 골수팬이 (일부는 지금까지도) 남은 애플을 제외하면 IBM 호환 PC에 저항할 세력은 더 이상 없었다. 이제 PC시장은 새로운 단계로 접어들었고, 이 시기 우리나라에서도 교육용PC를 IBM 호환 기종으로 결정하며 본격적인 PC 보급이 시작됐다.

다양한 기종이 난립하던 PC시장이 IBM 호환 기종으로 정리되자, 게임사들도 편해졌다. IBM 호환 기종에 맞춰 비교적 손쉽게 게임을 개발할 수 있게 되었다. PC제조사들도 'PC의 강력한 성능으로 게임이나 음악 같은 다양한 취미를 즐길 수 있다'는 점을 선전하기 시작했고 PC게임 시장은 폭발적으로 발전했다.

우리가 알고 있는 거의 모든 게임 장르가 1980년대 말부터 1990년대에 본격적으로 정립되었을 정도로 이 시기는 PC게임의 황금기였다. 그리고 그 중에서도 '모두가 좋아하는 게임'이었던 RPG의 강세가 두드러졌다. 지금까지도 고전 명작 RPG로 불리는 대부분의 게임이 이 시기에 등장해 빛을 발했고 PC게임 시장을 견인했다.

모두에게 충격을 준 '울티마7'

울티마는 PC게임의 황금기를 상징하는 게임이다. 1980년대 초 조악한 그래픽과 사운드로 출발했던 '울티마' 시리즈는 1990년 발매한 '울티마6: 거짓 예언자'에 이르면서 당대 최고의 대작반열에 들어섰다. XT 계열의 8비트 PC가 상당수 남아있는 상황에서 '울티마6'은 최첨단의 부품이었던 사운드카드와 256컬러 VGA카드를 요구했다. 인터페이스도 PC에 가장 잘 어울리는 마우스와 키보드를 중심으로 개발되었다.

'울티마6'은 게임 내적으로도 많은 혁신을 보여주었다. 이전까지의 RPG가 전투를 벌이는 필드 따로, 장비 구입이나 대화를 할 수 있는 마을 따로 식의 구성이었다면 '울티머6'은 그냥 하나의 맵에 모든 것이 다 있었다. 그리고 그 맵 안에서 NPC가 게임 내의 시간에 따라 도시 외곽의 집에서 시내의 가게로 이동해 영업을 하고 시간이 지나면 집으로 돌아가는 등 세계 자체가 '살아' 움직였다.

상호작용성도 엄청나게 발전했다. 열리지 않는 철문이 있다면 도구를 이용해 자물쇠를 따도 되고, 화약을 가져다가 불을 붙여 문을 폭파시켜버릴 수도 있었다. 어지간한 NPC는 죽일 수 있다거나 상점에 진열된 아이템을 훔칠 수도 있는 등 다양한 행동이 가능했다. 게임 스토리를 굳이 진행하지 않더라도 도시에 머무르며 여러 활동만 즐겨도 하루가 꼬박 갈 정도였다. '울티마' 시리즈의 제작사인 오리진이 '울티마6'에서 보여준 혁신성은 '울티마' 시리즈 최고의 걸작이라 일컬어지는 '울티마7: 검은 문'에서 한층 더 발전된 모습으로 선보여 극찬을 받는다.

1992년 출시된 '울티마7: 검은 문'은 게이머에게 충격 그 자체였다. 맵에 있는 대부분의 사물은 단순히 맵의 일부가 아니라 게이머가 원한다면 옮기거나 가지고 다닐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 길에 있는 돌멩이도 집어서 가방에 넣거나 다른 곳으로 옮길 수 있었고, 화덕을 이용해 빵을 굽거나 젖소의 젖을 짜 버터를 만드는 등의 다양한 행동이 가능했다.

전작인 '울티마6'에서 유명했던 자유도는 '울티마7'에 이르면 그 당시 상상할 수 있는 극한의 모습으로 구현되었다. 메인 스토리를 따라가지 않고 위에서 말했던 화덕을 이용해 빵을 굽거나 상인들과 잡담을 하는 등 다양한 활동을 즐길 수 있다., 지나가는 NPC를 죽이고 아이템을 빼앗거나 가게의 물건을 훔치고 저지하려는 경비병을 죽이는 등의 일도 가능했다.

더 놀라운 것은 게이머가 지나가는 무고한 시민을 죽이거나 아이템을 훔치면 거기에 반응해 파티 멤버가 화를 내며 심할 경우에는 아예 파티를 탈퇴하기도 했다는 것이다. 파티원이 단순히 주인공이 무슨 짓을 하든 전투를 같이 하는 기계가 아니라, 게임 내에서 자신의 가치관에 따라 함께하고 아니고를 결정하는 하나의 캐릭터로 움직였다. 조금 과장해 말하자면 지금 우리가 'GTA5'에서 볼 수 있는 오픈월드가 20년 전에 나온 게임인 '울티마6'과 '울티마7'에서 그 틀이 잡혀있었다.

'울티마6'와 '울티마7'이 준 충격은 엄청나다. 당시에도 '컴퓨터 게이밍 월드' 같은 게임 언론에서찬사를 보냈을 뿐 아니라 지금도 '울티마'를 즐긴 게이머의 인기투표에서 '울티마7'이 최상위권에 꼽히는 것은 물론, 게임 언론이 선정하는 '최고의 RPG'에 빠지지 않고 '울티마7'이 선정된다. 20년이 지난 지금도 말이다!

'서양식 RPG' 영광의 시대

이 시기는 '서양식 RPG'에 있어 말 그대로 영광의 시대였다. '울티마'와 함께 RPG의 한 축이었던 '위저드리' 역시 90년대 초 16비트 PC 기반의 256색으로 체제를 바꾸며 인기를 과시했다. 1992년 출시된 '위저드리7'은 256색을 사용하는 깔끔한 그래픽으로 던전 탐험을 기다려 온 게이머들을 열광케 했다.

이 '위저드리7'은 256색 도입 이외에도 다양한 요소를 추가해 게임을 새롭게 바꾸려 노력했다. '울티마6'가 선보인 '시간에 따른 NPC의 이동'도 도입되었고 심지어 던전 안에 있는 보물을 다른 NPC가 먼저 가져가 버려 돈을 주고 회수해야 하는 이벤트도 있었다. '위저드리'시리즈답게 하드코어하고 극악한 난이도는 그대로였지만.

'울티마'나 '위저드리'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그래도 '서양식 RPG'에 족적을 남긴 게임들도 이 시기에 많이 나왔다. 시에라 엔터테인먼트가 내놓은 '영웅의 길(Quest for Glory, 1989)'은 판타지 배경의 RPG로 게임 내에 퍼즐과 유머를 많이 도입해 큰 인기를 끌었으며 1990년대 중반까지 시리즈를 내놓았다.

웨스트우드의 '주시자의 눈(Eye of the Beholder, 1991)'은 '위저드리'와 비슷한 1인칭 시점에서 진행하는 던전 탐험을 구현했다. 이 당시 한 게임잡지로부터 '충격적일 정도로 훌륭한 3D RPG다'라는 평과 함께 별 다섯 개를 받았을 정도로 찬사를 받은 작품이다. 웨스트우드는 이외에도 비행 시뮬레이션(!)과 RPG를 결합한 '드래곤스트라이크(DragonStrike, 1990)'나 명작 RPG로 손꼽히는 '지혜의 땅(Lands of Lore: The Throne of Chaos, 1993)'을 내놓으며 실력을 과시했다.

'히어로즈 오브 마이트 앤 매직'의 기원이 되는 '왕의 하사품(King's Bounty, 1990)'도 이 시기에 등장했다. 이 게임은 악당들에 맞서 선대 왕이 숨겨 놓은 왕의 문장을 찾아내는 것이 목적으로, 판타지 배경에 당시 유행하던 턴 전략 게임과 RPG를 합쳐놓은 독특한 형태의 게임이다. 지도를 탐색하고 다양한 병사와 몬스터를 고용해 적과 맞선다는 점은 RPG 마니아뿐 아니라 전략 게임 마니아도 끌어들였고 이후 '히어로즈 오브 마이트 앤 매직' 시리즈가 본격적으로 등장하는 계기가 된다.

영광, 황금기, 그러나 서서히 드리우는 몰락의 그림자

1980년대 말부터 1990년대 중반까지 서양식 RPG는 영광의 절정을 맞는다. 이 시기 '대작' PC게임하면 곧 RPG였으며, 특히 '울티마' 시리즈는 매 시리즈마다 하드웨어 업그레이드를 주도하는 게임으로 악명(?)이 높았다. 새 '울티마' 시리즈가 나오면 컴퓨터 업그레이드는 당연한 것이라는 인식이 있었을 정도다.

하지만 달도 차면 기우는 법. 1990년대 중반까지 영광의 한 시절을 누리던 '서양식 RPG'는 곧 시대의 변화와 함께 내리막길로 치닫게 된다. 모든 것은 혼란스러워졌고 RPG 또한 예외는 아니었다. 길고 거친 폭풍의 전야에는 떠들썩한 파티가 있었고, 같은 시기 지구 반대편에서는 '일본식 RPG'가 또 다른 도약을 준비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