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dium App

Experience a richer experience on our mobile app!

이장석 대표가 본 강정호의 '현실'과 '희망'

by

"피츠버그라서 오히려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냉정한 현실을 직시해야죠."

넥센 히어로즈의 이장석 대표는 소속 선수들의 해외 진출을 적극 장려한다. 몸집이 큰 메이저리그 선수들 사이에서도 동양인 선수가 성공할 수 있다는 걸 보고 싶어 한다. 강정호는 이런 그의 소망을 이뤄줄 첫 번째 작품이다. 일찍부터 강정호의 메이저리그 진출을 적극적으로 도운 이유다.

한국 프로야구 출신 메이저리그 야수 '1호'라는 타이틀을 품에 안을 가능성이 높은 강정호, 현 시점에서 이 대표가 바라보는 상황은 어떨까. 그에게 강정호에 대한 솔직한 생각을 들을 수 있었다.

▶피츠버그라서 다행, 극성 팬들 등쌀 없다

이 대표는 가장 먼저 "피츠버그라서 다행이었다"고 말했다. 많은 이들이 부정적으로 봤던 '스몰마켓' 팀의 포스팅 입찰. 하지만 이 대표에겐 피츠버그는 강정호에게 기회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오히려 뉴욕 양키스 등의 빅마켓 구단에 갔다면, 강정호가 견디지 못하는 상황이 올 수 있다고 봤다. 그는 뉴욕 메츠에서 뛰던 마쓰이 가즈오를 예로 들었다.

메츠 역시 적극적으로 돈을 쓰는 팀이었고, 3년간 2010만달러(약 221억원)에 '리틀 마쓰이'를 영입했다. 하지만 마쓰이는 유격수 수비에서 심각한 문제를 보였고, 팬들의 원성은 극심해졌다. 결국 마쓰이 영입으로 2루로 이동한 호세 레이예스와 다시 자리를 맞바꿔 2루수로 뛸 수밖에 없었다.

이처럼 많은 투자를 하는 빅마켓 구단에 갔다면, 투자한 금액 대비 기대에 미치지 못할 경우 극성 팬들의 등쌀에 못 이겨 부진에 빠질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 대표는 피츠버그가 강정호의 포스팅에 500만2015달러(약 55억원)를 써냈다는 건 강정호를 필요로 한다는 것으로 봤다. 그는 "피츠버그의 500만달러와 뉴욕 양키스의 500만달러는 다르다. 피츠버그에게는 적지 않은 금액이다. 정호에게 기회가 갈 것"이라고 했다.

▶피츠버그는 이제 '전국구', 자신의 가치를 입증하라

그렇다면 피츠버그가 '다행'인 이유는 무엇일까. 피츠버그는 스몰마켓 구단으로 강정호에게 부담이 적다는 장점을 가진 동시에, '컨텐더' 팀이기 때문이었다. 이 대표는 "만약 스몰마켓에 전력도 약한 팀에 갔다면, 최악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피츠버그는 이제 '전국구 구단'으로 올라섰다. 포스트시즌에 나가는 팀이다"라고 평했다.

피츠버그는 1979년 창단 후 다섯 번째 우승을 끝으로, 월드시리즈 우승과 인연을 맺지 못했다. 1990년대 들어 잠시 반등하나 싶었지만, 배리 본즈가 떠난 1993년부터 2012년까지 20년 연속 5할 승률 미만이라는 굴욕적인 기록을 쓰기도 했다.

하지만 2013년과 2014년, 2년 연속 와일드카드로 포스트시즌 무대를 밟으면서 다시 일어서고 있다. 지난해 MVP 앤드류 맥커친을 중심으로 젊은 선수단이 단단한 경기력을 자랑하고 있다.

지난해 디비전시리즈, 올해 와일드카드 결정전으로 포스트시즌을 조기에 마감했으나, 계속 해서 지구 정상에 도전할 만한 전력을 갖추고 있다. 최근의 적극적인 전력 보강 움직임 역시 이와 무관하지 않다.

강정호가 피츠버그처럼 지구 우승이 가능한, '전국구 구단'에 가는 것이 중요한 이유는 분명하다. 큰 무대에서 자신의 가치를 미국 전역에 알려야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어필은 피츠버그 이후, 자신의 몸값과 직결돼 있다. 이 대표도 이 부분에 주목했다.

▶희망찬 강정호의 4년 플랜, 트레이드와 FA 계약

이 대표는 강정호의 계약 규모로 4년 1000만달러(약 110억원) 가량을 예상했다. 현실적으로 500만2015달러라는 포스팅 금액을 감안한 수치다.

하지만 이 대표는 "강정호도 자신을 둘러싼 냉정한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뉴욕 양키스 같은 팀이 자신에게 입찰하지 않았다는 것, 그리고 주전 자리가 보장되지 않는다는 현실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현실은 이렇지만, 반대로 기회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피츠버그에서 4년을 어떻게 보내느냐에 따라 강정호의 미래가 결정된다는 것이다.

이 대표는 "만약 정호가 피츠버그에서 기회를 잡아 자기 가치를 입증한다면, 계약기간이 끝나기 전에 다른 구단으로 트레이드될 수 있다. 그리고 FA 자격을 취득하면, 해당팀 혹은 다른 팀과 대형 계약을 맺을 수 있지 않나. 보스턴 레드삭스 같은 팀은 그렇게 검증된 선수에게 베팅한다"고 했다.

실제로 메이저리그에선 FA를 앞둔 선수들을 포함시킨 거래가 일반화돼 있다. 장기계약으로 묶기 힘든 선수라면, 당장 성적이 필요한 구단으로 보내 유망주들을 얻는 것이다. 강정호가 피츠버그에서 2~3년 안에 그런 모습을 보여준다면, 이적 후 대형 FA 계약을 기대할 수 있다.

강정호는 이 대표가 히어로즈 창단 이후 아끼던 선수다. 그는 강정호를 둘러싼 냉정한 현실을 언급하면서도, 희망이 가득한 미래를 전망하기도 했다. 과연 강정호가 그의 바람대로, 3~4년 뒤에 '더 큰 선수'가 될 수 있을까.

이명노 기자 nirvana@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