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하지도 않은 천우희가 청룡의 선택을 받다니…
17일 서울 광화문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제 35회 청룡영화상에서 천우희가 결국 울음을 터트렸다. 김희애 손예진 전도연 심은경 등 쟁쟁한 배우들 사이에서 여우주연상 수상자로 호명됐건만, 쉽게 무대에 오르지 못했다. 온 몸을 떨며 무대에 오른 뒤엔 "시상식 멘트를 준비하라고 했는데"라며 흐느꼈다. 그리곤 "이렇게 작은 영화에 유명하지도 않는 제가 큰 상을 받게 됐다"라며 눈물을 흘렸다. 그의 수상 소감 한 마디는 진행자였던 김혜수의 눈시울을 뜨겁게 했다. 시상식 후에도 천우희의 눈물 소감은 실시간 검색어를 장악하며, 올해 가장 감동스런 장면으로 남게 됐다. 유명하지도 않는 천우희의 수상 소감이 유명해진 순간이다.
시상식이 끝난 뒤 김혜수는 천우희에게 지켜보고 있던 후배가 상을 받게 돼 축하한다며 뜨거운 포옹을 나눴다. MC를 맡았던 유준상 역시 힘들었던 시절에도 묵묵히 무명의 세월을 견뎌낸 그녀에게 아낌없는 박수를 보냈다. 18일 오전에는 조여정이 자신의 SNS를 통해 천우희가 상을 받은 데 대해 "다시 생각해도 울컥, 포기하지 말라고 주시는 상"이란 메시지를 남겼다. 모두가 받을 줄 몰랐던 여우주연상이 모두에게 감동을 안긴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천우희의 말처럼 그는 대중들에겐 아직 낯설다. 그가 영화 '한공주'에 출연해 주연상을 받았지만, '한공주'의 관객수는 고작 22만 관객에 불과했다. 함께 후보에 올랐던 심은경의 '수상한 그녀'가 800만 관객을 넘은 데 비하면 초라한 성적이다. 하지만 '한공주'는 청룡영화상에서 '변호인'을 제치고 신인감독상까지 거머쥐며 큰 성과를 이뤄냈다. 지난 2004년 경남 밀양의 고등학생 44명이 울산의 여중생을 집단 성폭행 한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작품, 충격적인 실화였기에 출연을 꺼려하는 여배우들이 많았다. 천우희는 달랐다. 묵묵히 연기했다. 고등학교 시절 영화 '신부수업'을 통해 데뷔한 천우희는 크고 작은 작품에 출연했다. 영화 '마더'와 '써니'에서도 관계자들에게 눈도장을 찍었지만, 대중들에겐 아직 무명 배우였다. 그러던 차에 만난 '한공주'. 아직 얼굴이 널리 알려져 있지 않았던 덥분에 스물일곱살임에도 불구하고, 열여덟살의 여주인공을 소화할 수 있었다고도 밝혔다. 그러면서도 '한공주'의 실제 피해자들에게 누를 끼칠까 걱정하고 또 걱정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천우희는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지닌 주인공에게 가해지는 2차 폭력, 탈출구를 찾을 수 없는 소녀에게도 '희망'이 전해질 수 있다는 메시지를 따뜻하면서도 사려 깊게 연기해 호평을 받았다. 천우희의 진심어린 연기는 관객들을 동요하게 만들었고, '작은 영화 신드롬'을 일으키며 '한공주'는 화제를 모았다. 대형 배급사의 스크린 독과점에도 '한공주'는 확대 개봉을 할 수 있었고, 그 결과 독립영화로서는 드문 기록인 22만의 흥행을 기록하게 됐다. 유명하지 않은 배우의 저예산 독립영화가 22만을 기록했다는 사실은 '유명하지 않은' 그 배우의 실감나는 연기력 덕분이기도 했다. 청룡영화상 심사위원 역시 '한공주'에서 보여준 천우희의 놀라운 연기력과 가능성에 높은 점수를 줬다. 국내 영화계에 갈수록 여배우의 활약이 줄어들고 있는 추세 속에서 천우희라는 원석을 청룡영화상은 외면할 수 없었다.
김겨울 기자 winter@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