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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번의 실종]②한국 부러워하던 日, 어떻게 공격수 키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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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리그 골키퍼 육성의 출발은 아이러니하게도 '규제'였다.

한국프로축구연맹은 1999년부터 '외국인 골키퍼 보유 및 출전금지' 규정을 신설했다. 1993년 일화 천마(현 성남FC)가 사리체프를 데려와 리그 3연패를 달성하자 각 팀이 너도나도 외국인 골키퍼를 모셔왔다. 안 그래도 꺼리던 골키퍼 자리에 인재를 찾는 게 하늘의 별따기가 됐다. A대표팀의 국제경쟁력 약화까지 지적되자 결국 규제가 시행됐다. 이후 김용대(서울)부터 김승규(울산)까지 우수 골키퍼들이 발굴되면서 '골키퍼 부재' 문제는 어느 정도 해결됐다.

외국인 공격수 득세 이후 나온 '외국인 쿼터제'의 근간이 되는 사례다. 비슷한 문제를 겪고 있는 잉글랜드에서도 프리미어리그(EPL)의 외국인 쿼터제 논의가 활발하다. 하지만 세계 축구시장의 흐름에 역행하는 극약처방이 과연 합당한가에 대한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숙적' 일본도 비슷한 고민을 한 적이 있다. 사상 처음으로 본선에 올랐던 1998년 프랑스월드컵에서 공격수 부재를 절감하면서 조별리그 탈락의 쓴잔을 마셨다. 당시 일본이 내세울 만한 국내파 정통 스트라이커는 미우라 가즈요시, 나카야마 마사시 둘 뿐이었다. J-리그 대부분의 팀들이 1993년 리그 출범 뒤 게리 리네커(잉글랜드), 지코, 알신도(이상 브라질), 흐리스토 스토이치코프(불가리아), 패트릭 음보마(카메룬) 등 외국인 공격수들을 집중적으로 영입한 결과였다.

이들이 찾은 해답은 '육성'이었다. 일본축구협회(JFA) 주도 하에 '권역별 스트라이커 육성 프로그램'을 시행했다. 승패를 떠나 발전이 곧 생존이라는 공감대를 형성했다. 전국 47개 도도부현 축구협회에서 유망주를 선별한 뒤, JFA가 육성을 지원했다. 스트라이커에게 필요한 체격, 기량 등을 세밀하게 평가한 뒤 성장을 후원했다. 프로팀에서도 협회와의 공조 하에 유스 시스템을 활용한 선수 발굴, 유학 프로그램을 지속적으로 수행했다. 이 결과 일본은 히라야마 소타, 모리모토 다카유키, 사토 히사토, 오카자키 신지, 도요다 요헤이, 가키타니 요이치로, 스즈키 무사시, 하프나 마이크 등을 발굴하면서 스트라이커 부재를 어느 정도 해소했다. 여전히 '대형 공격수'에 목말라 하고 있으나, 더 이상 '뽑을 만한 공격수가 없다'는 한탄은 나오지 않고 있다. 현재도 일본의 스트라이커 육성 프로그램은 꾸준히 진행이 되면서 우수 인재 발굴의 근간이 되고 있다.

결국 답은 현장에 있다. 한국 축구계 모두가 머리를 맞대고 고민해봐야 한다.

박상경 기자 ppark@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