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남FC는 시민구단 최초로 아시아챔피언스리그(ACL) 무대를 밟게 됐다. FA컵 우승팀 자격으로 말이다. 성남은 23일 FC서울과의 FA컵 결승에서 120분간 혈투 끝에 0대0으로 비겼다. 이어진 승부차기에서 골키퍼 박준혁의 신들린 선방에 힘입어 4-2로 승리, 우승컵에 입을 맞췄다.
경기 전 '오기'가 발동했다. 복수혈전, 성남 선수들의 키워드였다. 벼르고 별렀다. 지난달 22일 전북을 꺾고 결승에 오르자 성남 선수들의 승부욕을 자극하는 얘기가 들려왔다. 일명 '버스 사건'이었다. 서울 선수들이 FA컵 준결승에서 상주를 꺾고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성남의 결승 진출 소식을 듣고 환호성을 지른 장면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퍼져나갔다. 서울 측은 "선수들이 결승을 안방에서 치를 수 있어 기뻐한 것"이라며 사태를 수습했다. 그러나 K-리그 클래식 정상을 접수한 전북보다 하위권인 성남을 상대하는 것이 편하다는 마음이었을 것이라는 해석이 지배적이었다. 이 소식을 접한 한 성남 팬은 복수의 의지가 담긴 플래카드를 제작했다. 문구는 자극적이었다. '니네 접때 버스서 비웃었다며? 오늘은 질질 짜게 해줄께 ㅋㅋㅋ.' 이 플래카드는 결전을 앞둔 성남 라커룸에 걸렸다. 경기가 끝난 뒤 주장 박진포는 "사실 이 플래카드를 보면서 의욕을 다졌다. 우승을 하고 사진까지 찍으니 기분이 최고였다"고 말했다.
성남 선수들은 우승의 기쁨에 도취될 시간이 없었다. 저녁식사만 간단히 하고 곧바로 숙소로 향했다. 슬픈 현실로 돌아와야 했다. 또 다른 고비가 남았다. K-리그 클래식 잔류다. 성남은 7승13무16패(승점 34)를 기록, 11위에 처져있다. 10위 경남과의 승점차는 2점이다. 남은 경기는 2경기. 26일 인천, 29일 부산과 운명의 맞대결만 남겨두고 있다. 자력 잔류는 물건너갔다. 어차피 최종전 결과까지 지켜봐야 하는 상황이다. 10위와 11위는 180도 다르다. 10위는 자동 잔류이고, 11위는 챌린지(2부 리그) 플레이오프 승리 팀과 승강제를 치러야 한다. 반드시 성남이 순위를 한 단계 끌어올려야 하는 이유다.
내년시즌 표면적인 모습도 중요하다. 클래식에 잔류하지 못할 경우 ACL에 출전하는 최초의 K-리그 2부 리그 팀이 될 수 있다. 김학범 성남 감독은 "우리 팀이 이렇게 밑에 있을 팀이 아니다"고 얘기했지만, 운명은 예측하기 힘들다. 2부 리그로 강등될 경우 후폭풍이 예상된다. 선수단 규모와 예산 축소가 불가피하다. 전력이 급감할 수 있다. "ACL에서 망신을 당하지 않겠다"는 김 감독의 공언이 지켜지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선수들의 또 다른 '오기'가 필요한 시점이다. 베테랑 골키퍼 전상욱은 "2부 리그에서 ACL에 나가면 체면이 말이 아니다. 남은 두 경기는 FA컵 결승보다 더 필사적으로 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진포도 "난 어차피 상주로 간다. 챌린지에서 성남을 만나고 싶진 않다"고 했다.
김진회기자 manu35@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