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dium App

Experience a richer experience on our mobile app!

[공부하는선수]수학을 좋아하는 '15세 인어'이다린의 꿈

by

지난 9월 25일 인천아시안게임 여자혼계영 400m 결승, 여중생 배영 에이스 이다린(15·서울체중)이 스타트를 끊었다. 평영 양지원(17·소사고)-접영 안세현(19·울산광역시청)-자유형 고미소(17·인천체고), 각종목 10대 에이스들이 혼신의 힘을 다해 물살을 갈랐다. 4분04초82의 한국신기록을 작성했다. 일본(4분00초94)에 이어 값진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아시안게임 사상 첫 혼계영 은메달, 인천아시안게임 첫 여자수영 은메달이었다. 10대 소녀들의 역영은 아름다웠다. 특히 1999년생, 15세 막내 이다린이 '언니'들과 함께 일궈낸 아시안게임 은메달은 한국 여자수영의 선물이었다. 그후 한달반, 지난 12일 오전 서울체중 3학년 2반 교실에서 이다린을 만났다. 앳된 교복 차림의 '은메달' 소녀는 친구들과 진지한 표정으로 2학기 기말고사 체육 과목 답안지를 맞춰보고 있었다.

▶전교 1~2등 놓치지 않는 스마트 수영선수

3학년 2학기 기말고사 마지막 날이라고 했다. 사흘간 총 8과목 필기시험을 치렀다. 이날은 영어와 체육 시험이었다. 시험이 끝난 후 한 친구가 영어, 체육 시험 정답을 불렀다. 이다린은 침착하게 눈으로 답을 맞췄다. 고개를 끄덕였다. 만점이었다. 8과목에서 단 3문제만 정답만 비껴갔다. "영어에서 2개, 컴퓨터를 다루는 정보 과목에서 1개를 틀렸다"고 했다. SK텔레콤 후원 아래 호주 마이클 볼 감독의 클럽에서 전지훈련을 해온 이다린은 영어를 제법 잘한다. "듣기, 말하기는 자신 있는데, 문법이랑 단어가 부족하다 보니…, 더 열심히 해야겠어요"라며 못내 아쉬워했다.

옆에 서 있던 오정훈 서울체중 교감이 "전교 1~2등을 놓치지 않는다"고 살짝 귀띔했다. 공부도 운동도 왕도는 없다. 비결을 묻는 질문에 "따로 공부할 시간이 많지 않기 때문에 수업시간에 최대한 열심히 듣는다"고 했다. "매일 새벽 5시에 일어나 훈련을 하지만, 아무리 피곤해도 수업시간에는 잔 적이 없다"며 웃었다.

'스마트한 수영선수' 이다린의 하루는 새벽 5시면 시작된다. 새벽 5시30분부터 7시30분까지 수영장에서 물살을 가른다. 박태환을 통해 널리 알려졌듯이 국내 엘리트 선수용 수영장 사정은 열악하다. 이다린 역시 50m 공인풀이 없어, 방이동 인근 25m 풀에서 훈련한다. 훈련을 마치면 8시20분 등교해 4교시 수업을 꼬박 받는다. 오후 체육수업, 특별활동, 동아리 활동을 한 후 2시30분부터 2시간동안 오후 훈련을 한다. 5시부터 6시30분까지는 체력훈련과 마사지를 받은 후 7시 귀가한다. 일주일에 2번, 각 2시간씩 영어, 수학 과외도 받는다. 미국인 선생님과의 전화영어도 중학교 1학년때부터 계속해 왔다.

훈련과 대회 참가로 수업 진도를 못 따라갈 때도 많지만, 공부에 대한 두려움은 없다. 친구들도 선생님들도 적극적으로 배려하고, 서로 돕는다. "체육중학교라서 좋은 것같아요. 비슷한 상황에 있는 친구들이 많기 때문에 서로 이해하고 도와줘요." 보통 45분 수업중 10~15분은 자율학습으로 진행된다. 선생님들은 이 시간을 활용해 진도를 따라가지 못한 학생선수들을 1대1로 지도한다. "제가 놓친 부분은 프린트물로 정리해주시고, 모르는 부분은 따로 보충해주시기 때문에 부담감이 적죠. 일반 학교였다면 따라가기 힘들었을 것"이라고 했다. 선수 눈높이에 맞춘 시험문제 역시 공부를 포기하지 않는데 큰 힘이 된다. "시험문제가 일반학교보다 쉬워요. 너무 어렵게 출제되면 쉽게 포기할 텐데 조금만 공부하면 누구나 풀 수 있는 문제들이기 때문에 끝까지 최선을 다하게 되죠. 공부를 즐기게 돼요."

▶ 수학을 좋아하는 여중생 인어

이다린은 학교 생활에도 적극적이다. 서울체중 입학때 신입생 대표로 선서를 했다. 1학년때는 소년체전에 출전하는 언니 오빠를 응원하는 출정식에서 사회를 맡았다. "사회보는 게 별로 떨리지는 않았다"며 웃었다.

이날 시험 후 이다린은 "이번주 청소당번"이라며 빗자루를 손에 들었다. 교실 구석구석 빗질을 하는 모습도 반듯했다. 제일 좋아하는 과목을 묻자 "수학"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잘하지는 못하지만, 문제를 푸는 게 재밌어요. 문제가 풀렸을 때의 희열이 있거든요"라며 웃었다. 좋아하는 과목을 줄줄 읊었다. "과학도 재밌어요. 특히 실험! 얼마전 '탱탱볼 만들기'를 했는데 신기했어요. '기가(기술가정)'실습도 정말 좋아해요. 손으로 만드는 걸 좋아하거든요. 바느질도 잘해요. 방석, 가방, 필통도 만들었어요."

백형훈 서울체중 체육부장은 "다린이는 잠재력도 뛰어나지만, 무엇보다 성실하고 노력하는 선수다. 공부와 운동, 모든 면에서 귀감이 되는 학생선수"라고 칭찬했다. 오정훈 서울체중 교감 역시 "외모처럼 야무지다. 무엇보다 선수이기 이전에 학생이라는 점을 잊지 않고 있다. 우리가 지향하는 '공부하는 학생 선수'상에 딱 맞아떨어지는 모델"이라고 말했다.

수영과 공부중 어느 것이 더 어렵냐는 말에 이다린은 잠시 망설였다. "그래도 공부가 어렵다"는 답이 돌아왔다. "공부는 혼자 앉아서 하는 것이고, 잘하고 있는 건지 확신이 들지 않을 때가 많다. 수영은 그때그때 기록이 나오고, 느는 게 눈으로 보이니까"라며 생긋 웃었다. 이다린은 지난 2월 뉴사우스웨일스 스테이트 오픈 챔피언십 배영 100-200m 최연소로 결승 진출을 이뤘다. 4월 동아수영대회 중등부 배영 50-100m 2관왕에 올랐고, 100m에선 1분02초F의 개인 최고기록도 달성했다. 7월 김천에서 열린 인천아시안게임 선발전에선 중등부 배영 100m에서 우승했고, 200m에선 2분12초63의 개인 최고기록으로 2위에 올랐다.

'공부하는 수영선수' 이다린의 목표 의식은 확실했다. "내년 세계선수권 A파이널 기준기록을 통과하는 것, 리우올림픽 결선 무대를 밟아보고 싶어요."

공부와 수영, 모두 포기할 수 없는 꿈이다. "초등학교 때부터 공부와 운동을 같이 하는 것이 당연했고, 공부를 놓은 적은 단 한번도 없어요. 양준혁, 정정수 오빠처럼 최고학부인 서울대 체육교육과에서 공부와 수영을 병행하고 싶어요." 전영지 기자 sky4us@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