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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이준혁, 나무보다 숲을 보는 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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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가 아니라 숲을 봐야 한다는 말, 이해하긴 쉽지만 실천하기는 어렵다. 특히나 그 나무에게 숲을 위해 햇빛을 양보하라고 누구도 강요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래서 때론 보이지 않는 곳에서 배려의 미덕을 발휘한 이들을 위해서도 박수와 격려가 필요하다.

최근 종영한 MBC '내 생애 봄날'에서 배우 이준혁이 그랬다. 이야기의 중심에서 한걸음 뒤로 물러나는 게 배우로서 아쉬울 법도 하지만, 이준혁은 다른 캐릭터를 위해, 그리고 드라마의 완성도를 위해 기꺼이 자신을 낮췄다. 커다란 숲을 바라보면서 나무처럼 한결같이 자리를 지켰다.

'내 생애 봄날'에서 이준혁이 연기한 강동욱은 비운의 캐릭터다. 사랑하는 여자를 두번이나 떠나보내야 했다. 그것도 자신의 친형에게. 동하(감우성)와 봄이(수영)가 심장을 매개로 운명적으로 끌릴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동욱의 슬픔을 이준혁은 절제된 연기로 담담하게 그려냈다. 한 여자를 두 형제가 사랑한다는 설정이 '막장'스럽지 않았던 것도 이준혁의 연기가 그만큼 설득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동욱이 봄이를 떠나보내던 이별 장면 때문에 이 드라마에 출연한 것 같다"고 했다.

"동욱이 봄이를 동하에게 보내주고 봄이가 제주도로 동하를 찾아가는 7부 이야기는 대본으로 볼 때도 눈물이 났어요. 동욱에겐 너무나 어려운 결정이잖아요. 하지만 그랬기 때문에 더 성숙하고 어른스러운 사랑이었다는 생각이 들어요. 사랑하는 사람을 곁에 두어야 하는 것 아니냐고도 하지만, 저는 동욱의 선택이 옳았다고 봐요."

봄이가 동하의 아내 수정의 심장을 이식받았다는 비밀이 밝혀지고 동욱이 봄이와 헤어진 뒤로 드라마의 전체 이야기에서 동욱의 역할은 줄어들 수밖에 없었다. 이준혁도 "동욱의 갈등을 마무리 지었기 때문에 7, 8부 이후로는 이미 엔딩을 찍는 기분이었다"며 웃었다. 그래도 아쉬움은 전혀 없다. 동하와 봄이의 이야기에서 이 드라마가 전하고자 하는 행복의 메시지가 그려져야 한다고 믿었다.

"만약에 동욱이가 봄이의 심장을 수술하다가 봄이가 세상을 떠났다면 동욱의 비극이 더 커질 수도 있었겠죠. 캐릭터도 더 매력적이었을 테고요. 하지만 저는 동욱이 한동안 소원했던 가족과 가까워지고, 동하도 아내를 잃은 슬픔을 딛고 행복을 깨닫게 되는 결말이 더 좋았다고 생각해요."

만약 드라마 속 상황이 실제로 벌어진다면 이준혁은 어떤 선택을 했을까? "놓아줄 수 있어요." 단호한 대답이 돌아온다. 그 상대가 형이라면? "그건 좀 애매할 수 있겠네요…." 잠시 고개를 갸웃하던 이준혁이 얘기를 이어갔다. "'사랑이 어떻게 변하니'라는 유명한 영화대사가 있잖아요. 예전에는 사랑은 영원해야 한다고 생각했죠. 하지만 지금은 아니에요. 열정이 있었다면 헤어졌다고 해서 사랑이 아니라고 할 순 없죠. 누군가가 나의 행복한 모습을 봐줬다는 게 얼마나 고마워요. 그가 더 궁금한 세상이 있다면 그곳으로 나아가도 좋다고 생각해요."

작품과 캐릭터를 대하는 여유로움이 그의 삶에도 녹아든 것 같다. 20대엔 조급하기도 했고 불안하기도 했다. 때론 배우의 길이 맞는지 고민했다. 하지만 군대를 다녀오고 30대가 되면서 한층 유연해졌다. 그는 "다음 작품에 대한 기대감과 설렘을 느낄 때 가장 행복하다"고 했다. 또 "하나의 작품을 만들어가는 과정이 힘들어도 언젠가는 끝이 있다는 사실에 감사해한다"고도 했다.

"20대에 연예계 대표 노안으로 꼽혔어요. 2012년 방송된 '적도의 남자'에선 엄태웅 선배랑 친구로 나왔잖아요. (웃음) 예전에는 어려보여야 하는지, 멋있어 보여야 하는지, 아니면 송강호 선배처럼 카리스마가 있어야 하는지, 이런저런 생각을 한 적도 있죠,. 하지만 이젠 지금의 제 모습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게 됐어요. 부족함을 채우기 위해 더 노력하게 됐고요. 나에게 너그러워지니까 타인을 바라보는 시선도 너그러워지는 것 같아요. 이런 변화들이 무척 반가워요. 그래서 작품에 대해서도 마음을 열게 됐어요. 어떤 작품이든 공감할 수 있는 연기를 보여드리면 되는 것 같아요."

김표향 기자 suzak@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