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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라진 판정기준, 더 심각한 KBL 권위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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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스 Ⅰ

9일 고양에서 열린 오리온스와 삼성의 경기 3쿼터. 55-57로 뒤진 삼성의 공격.

삼성 김준일이 우중간 3점슛 라인 밖에서 공을 잡았다. 공격 제한 시간 4초밖에 남지 않았다. 결국 김준일은 짧은 드리블 이후 3점슛을 시도했다. 의도를 간파하고 있었던 오리온스 이승현은 밀착마크를 하며 손을 곧게 뻗고 있었다. 두 선수의 몸통이 부딪쳤고, 김준일은 밸런스를 약간 잃은 채 3점슛을 시도했다. 이때 휘슬이 불었다. 이승현의 파울을 지적하며 자유투 3개를 선언했다. 이승현은 억울한 제스처를 취했다. 그럴 만했다. 정상적인 몸싸움 과정이었고, 슛을 하는 도중 손을 치는 불법적인 동작은 없었다. 명확한 오심이었다.

●케이스 Ⅱ

10월28일 창원 LG-전자랜드전 4쿼터. 7분 1초를 남기고 LG 포워드 김영환이 골밑 우중간 3m 지점에서 공을 잡았다. 미스매치가 이뤄졌다. 마크맨은 전자랜드 포인트가드 박성진. 좋은 포스트 업 기술을 가지고 있는 김영환은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적극적인 포스트 업으로 밀고 들어가기 시작했다. 이때 박성진이 그대로 넘어졌다. 김영환은 파워를 이용, 정상적인 포스트업을 했는데, 파워에 밀린 박성진이 쓰러진 것. 그러자 휘슬이 울렸다. 김영환의 공격자 파울. 이해할 수 없는 판정이었다.



판정기준이 바뀌고 있다. 심각한 문제점이다. 올 시즌 KBL(한국농구연맹)은 FIBA 룰을 전면적으로 도입했다. 볼이 없는 지역에서 몸싸움을 전면적으로 허용하겠다는 의미. 또 볼을 가진 선수와 수비자 사이에서 일어나는 충돌에 대해서도 명확한 파울이 아니면 휘슬을 불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명이었다. 그런데 1라운드가 지난 지금 다시 과거로 회귀하고 있다.

전면적인 몸싸움 허용은 환영을 받았다. 기본적으로 심판이 경기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했다. 결국 경기 흐름은 자연스럽게 흘렀고, 긴장감과 박진감이 고조됐다.

국제경쟁력에 있어서도 좋은 취지다. 매번 국제대회 때마다 대표팀 선수들은 완화된 몸싸움으로 인해 적응이 쉽지 않았다.

그런데 최근 판정기준이 바뀌기 시작했다. 이해할 수 없는 콜들이 많이 나온다. 위에 지적한 두 가지 케이스는 대표적인 장면들이다. 이 외에도 여러 차례 기준이 불명확한 휘슬이 울린다.

이같은 현상은 예사롭지 않다. 농구 판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판정기준이기 때문이다. 당연히 선수들이나 코칭스태프는 혼란에 휩싸인다.

하지만 이런 부작용은 예견된 부분이기도 했다. 현장에 있는 많은 지도자들과 관계자들은 "1라운드 전면적인 몸싸움 허용이라는 기준이 언제까지 굳건할 지 의문"이라고 말해왔다.

여기에는 배경이 있다.

KBL은 FIBA 룰을 전격적으로 도입했다. 각 구단이나 심지어 심판진들도 적응하는 시간이 너무 짧았다. 시즌 시작 전 연습경기부터 이같은 변화된 판정기준을 적용하기 시작했다. 너무 늦었다. 때문에 시즌 시작 전부터 "올 시즌 가장 큰 변수 중 하나는 바뀐 판정기준"이라고 했다.

몸싸움의 전면적 허용 자체를 부정하는 말이 아니다. 오히려 이것은 환영할 만하다. 지난 시즌 플레이오프부터 몸싸움이 많이 완화됐다. 사실 도입시기에 있어서 KBL이 좀 늦은 감이 있었다. 그동안 '유리농구'라는 비아냥섞인 비판이 있었다.

판정기준에 대한 철저한 준비없이 도입하다보니 현장에서는 혼란이 많았다. 1라운드 초반은 특히, 실린더를 침범하는 수비나, 골밑에서 슛동작 중 손을 치는 부분에 대해서 거의 불지 않았다. 그래도 전면적 몸싸움 허용에 대한 반응은 호의적이었다. 너무 많은 휘슬남발로 흐름이 많이 끊어졌던 과거와 달리 경기진행속도 자체가 빨라졌기 때문이다. 당연히 코트에서는 치열함이 가중됐고, 경기의 몰입도와 '흥미도'는 자연스럽게 올라갔다. 몸싸움 허용에 의한 부작용만 손질하면 되는 수준이었다.

그런데 1라운드 막판부터 서서히 휘슬이 빈번해졌다. 기준을 알 수 없는 파울이 나온다. 판정기준의 전면적 변화에 대한 확고한 기준과 질 높은 심판의 교육이 없었기 때문이다. 때문에 시즌 중 있어서는 안될 판정기준의 오락가락 현상이 생기기 시작한다. 사실 심판진들도 억울할 수 있다. 충분한 적응시간과 학습 없이 코트에서 판정을 내려야 한다.

KBL 고위수뇌부에서 전면적 몸싸움 허용을 강조하다 보니 휘슬을 불기가 힘들다. 그런데 현장에서는 불만이 쌓여간다. 게다가 강한 수비로 인해 득점대는 변화가 없다. 김영기 총재는 이미 '득점대가 만족도'라는 논리를 주장했다. 때문에 심판진에 심리적 압박이 가해질 수밖에 없다. 오락가락 판정기준의 이유다.

그런데 여기에서 또 하나 유심히 봐야할 부분이 있다. 'FIBA 룰'을 도입하면서 KBL은 크게 세 가지를 바꿨다. 'U1', 'U2' 파울의 도입과 감독의 항의 금지, 그리고 엔트리에 포함되지 않는 선수들이 벤치에 앉지 못하게 하는 제도다.

'U1' 파울은 예전 속공파울이다. 로컬룰이다. 속공시 파울을 할 경우 보너스 자유투 1개를 자동적으로 주는 제도. 'U2' 파울은 언스포츠맨라이크 파울이다. 국내 프로농구는 속공 시 의도적으로 반칙을 하는 경향이 심했다. 때문에 경기 흥미도가 떨어진 부분이 있다. 그래서 생긴 것이 속공파울이다. 하지만 부작용이 있다. 속공 시 정상적인 수비를 할 수 없다. 한 감독은 "예를 들어 스피드가 뛰어난 SK 김선형이 속공할 경우 길을 비켜줘야 한다"고 했다. 자칫 사소한 몸접촉이 나올 경우 그대로 파울이 불리기 때문이다. 속공 시 습관적으로 파울로 끊는 한국농구의 폐단을 끊는다는 의미에서는 괜찮은 제도다. 하지만 없애야 할 로컬룰이다. 절대적인 판정기준으로 봤을 때 심판 역량을 키운다면 속공시 의도적인 파울과 그렇지 않은 파울을 구분해야하고 정확히 휘슬을 불어야 하기 때문이다. 로컬룰은 기본적으로 필요악이다. 리그만의 로컬룰이 많아진다는 것은 그만큼 팬의 진입장벽이 높아진다는 의미. 이것저것 알아야 경기를 수월하게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시점에서 KBL이 심판진의 역량을 키우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는 지는 의문이다. 그동안 판정논란이 끊이지 않았던 KBL이다.

또 하나, 감독의 항의 금지와 엔트리에 포함되지 않는 선수들을 벤치에 앉지 못하게 하는 제도는 KBL에 이득을 가져다 준다. 물론 과도한 감독항의는 나쁘다. 경기흐름을 끊고, 판정에 불신감을 조성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감독의 항의를 금지시키고 주장을 통해 항의통로를 만들었다면, 그만큼 KBL이 오심비율을 낮추는 노력을 해야 한다. 하지만 극적으로 변한 건 없다. 11월 3일 동부와 오리온스전에서 나왔던 두 차례의 절묘한 블록슛이 모두 반칙으로 둔갑했던 것처럼, 여전히 KBL 심판진의 공중볼 판정은 매우 취약한 수준이다.

NBA를 보면 승부처에서 극적인 득점이나 호수비가 나왔을 때 흥분한 선수들이 날뛰는 벤치 풍경을 보여준다. 응원하는 팬은 자연스럽게 동화될 가능성이 높은 액션들이다. 최근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발가락 골절부상을 입은 오클라호마시티 선더의 케빈 듀란트가 깁스를 하고 나와 팀동료들이 중요한 샷을 넣을 때 환호하는 장면이다. 경기 하이라이트를 보면 카메라에 많이 잡힌다. 하지만 KBL이라면 있을 수 없다. 엔트리에 빠져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벤치에서 과도하게 흥분하는 모습을 표출하는 것을 엄격하게 금지했다.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다. 총재가 강조하는 흥미도에 역행하는 부분이다. 전광판을 치는 경우 테크니컬 파울을 매번 줬다. 판정에 항의한다는 의미로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과거 벤치 앞 전광판의 '쿵'하는 소리를 듣고 심판이 테크니컬 파울을 불었는데, 실제 친 선수가 아닌 벤치에 가만있던 선수가 받아 대신 벌금을 낸 경우도 많았다.

여기에는 두 가지 문제점이 있다. 일단 벤치에 앉지 못하는 선수들은 대부분 유망주들이다. 프로선수로서 정체성에 혼란을 느낀다. 당연히 동기부여가 제대로 되지 않는다. 현장에서 항상 지적하는 부분이다. 프로농구를 위해서도 도움이 안된다. 이런 부분이 진정한 로컬룰이 필요하다. FIBA 룰이 아닌 모두 벤치에 앉히는 유연성이 필요하다. 그런데 KBL은 묵묵부답이다. 반면 심판진은 경기를 관리하기 수월해진다. 감독의 항의금지, 엔트리 제외 선수의 벤치 착석금지는 코트 안에서 KBL을 대표하는 '심판진'의 권위가 자연스럽게 높아지는 효과를 얻는다.

결국 모든 부분을 꼼꼼이 따져보면 KBL은 'FIBA 룰 도입'을 자신의 권위를 높이는데 활용하고 있다. 반면 자신들이 해야 할 심판진 역량 강화나 관중의 흥미를 높이기 위한 제도보충에는 묵묵부답이다. 그리고 '외국인 쿼터제 확대'와 같은 비 상식적인 제도발표에만 열을 올린다. 총재가 그토록 강조하는 '관중의 흥미도'를 높이는 진정한 방법을 그들은 알고 있을까. 류동혁 기자 sfryu@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