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틸리케 1기'가 해산했다.
한국 축구의 새로운 선장 울리 슈틸리케 감독의 첫 출발이라 관심이 높았다. 두 경기를 치렀다. 결과적으로 절반의 성공이었다.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 60위 파라과이에는 2대0으로 승리했지만, 15위 코스타리카에는 1대3으로 무릎을 꿇었다. 한국의 FIFA 랭킹은 63위다. 분위기는 사뭇 다르다. 두 경기를 통해 기대치는 한껏 상승했다.
슈틸리케 감독은 당초 22명을 소집했다. 하지만 구자철(마인츠)과 김진수(호펜하임)가 부상으로 제외돼 장현수(광저우 부리) 조영철(카타르SC) 한교원(전북)을 추가 소집했다. 23명이 실험대에 올랐다. 김승대(포항)를 제외한 22명이 그라운드를 밟았다. 2경기 연속 선발 출전한 태극전사는 3명에 불과했다. 주장 기성용(스완지시티)과 이청용(볼턴) 남태희(레퀴야)다. 슈틸리케 감독은 2경기에 걸쳐 실험에 실험을 거듭했다. 파라과이전은 파격이었고, 코스타리카전은 예상 가능한 베스트 11을 가동했다.
"현재 보완할 점을 말하기는 힘들다. 개개인의 선수에 대해 비판한다면 이 자리가 아니라 선수들과의 미팅에서 해야할 일이다." 감독으로선 당연한 공식입장이다. 물론 슈틸리케 감독의 머리 속에 개개인의 성적표는 존재한다.
그럼 슈틸리케 감독과의 첫 만남에서 눈길을 사로잡은 A학점의 주인공은 누구일까. '황태자'는 '쌍용'이었다. 감독이 바뀌어도 변하지 않는 한국 축구의 두 축이었다. 주장 완장을 찬 기성용은 전술의 키였다. 수비형 미드필더로 시험대에 오른 그는 코스타리카전에선 공격형으로 전진 배치됐다. 활동 반경은 으뜸이었다. 수세시에는 중앙수비까지 가담하며 커버 플레이를 했다. 공격 전개 과정에선 줄기였다. 패스는 예리하면서 힘이넘쳤다. 상황 판단도 뛰어났다. 전진해야 할 때는 볼흐름에 몸을 맡기거나 드리블로 적진을 헤쳐나갔다. 물러서야 할때는 빼어난 완급 조절로 숨고르기를 했다. 볼키핑력도 세계적인 레벨이었다.
이청용도 부활했다. 2014년 브라질월드컵의 아픔은 더 이상 없었다. 왼쪽과 중앙을 넘나드는 창조적인 플레이로 공격을 이끌며 활로를 개척했다. 개인기와 스피드, 반박자 빠른 패스가 곁들여 지면서 칼날은 더 예리해졌다. 슈틸리케 감독이 엄지를 세울 수밖에 없는 위력을 과시했다.
남태희의 재발견도 눈에 띈다. 슈틸리케 감독과 남태희는 구면이다. 슈틸리케 감독의 카타르 클럽 사령탑 시절 남태희는 옆 집에 살았다. '위력'이 있었다. 파라과이전에서 A매치 데뷔골을 터트린 그는 코스타리카전에서도 중용되며 섀도 스트라이커로 주전 경쟁에 가세했다. 공간 활용 능력과 스피드, 폭발적인 드리블이 눈길을 끌었다. A학점으로 손색이 없었다.
파라과이전에서 눈부신 선방쇼를 펼친 골키퍼 김진현(세레소 오사카)과 코스타리카전에서 수비형 미드필더로 출격한 인천아시안게임 금메달리스트 장현수(광저우 부리)도 특별했다. 슈틸리케 감독으로부터 공개적인 칭찬을 받았다. "실점 우려도 있었지만 오늘 경기에선 골키퍼가 특히 잘했다." "가장 중요한 것은 가운데다. 중앙 미드필더와 수비가 중요하다. 아시안게임 대표팀에 있었던 장현수가 가장 뛰어났다." 둘의 A학점에 이견이 없다.
왼쪽 날개, 윙백으로 공수에 걸쳐 '멀티플레이어'로 중용된 김민우(사간 도스)도 가능성을 인정받았다. 김민우는 파라과이전에서 선제 결승골을 터트렸고, 코스타리카전에서 박주호가 부상하자 전반 20분 교체투입됐다.
그 외 선수들은 A학점을 받기에는 평가가 엇갈렸다. 코스타리카전에서 풀타임을 소화한 이동국(전북)은 골 이외에 공격 템포에 적응하지 못했다. 손흥민(레버쿠젠)은 의욕은 넘쳤지만 그다운 플레이가 나오지 않았다. 수비라인에서도 확실하게 눈도장을 받은 선수가 없었다. 1분도 출전하지 못한 김승대는 평가 대상에서 제외됐다.
다음달 중동에서 A매치 2연전이 열린다. 아시안컵에 대비한 요르단(11월 14일), 이란(11월 18일) 원정이다. 슈틸리케 감독의 실험은 계속된다. 김성원 기자 newsme@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