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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AG]28년만의 일군 金, 시작과 끝은 '임창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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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년 만의 일군 금메달의 시작과 끝은 '임창우'였다.

임창우는 이광종호 첫 승리의 물꼬를 튼 주인공이었다. 지난달 14일 말레이시아와의 조별리그 1차전에서 전반 27분 헤딩 결승골을 폭발시켰다. 기분좋은 시작이었다.

그리고 17일이 흘렀다. 임창우는 2일 북한과의 결승전에 섰다. 그리고 마침표를 찍었다. 극적이었다. 연장 후반 종료 직전 골을 넣었다. 왼쪽 코너킥을 이용재가 헤딩한 것이 두 차례의 북한 수비에 막혔다. 공은 때마침 골문 앞에 있던 임창우에게 연결됐다. 임창우는 침착하게 멋진 오른발 발리 슛으로 골망을 흔들었다. "상황이 애매해서 쐐기를 박으려고 슈팅을 날렸다"는 것이 임창우의 설명이었다.

이 골로 임창우의 한도 한 방에 씻겨내려갔다. 울산 유스팀 출신인 임창우는 축구 엘리트였다. 15~17세 연령별대표를 지냈다. 그러나 정작 뛰어야 할 곳에선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다. 2011년 울산 유니폼을 입고 프로에 데뷔한 임창우는 지난 3년간 6경기 출전에 그쳤다. 주전경쟁에서 밀렸다. 중앙 수비와 측면 수비가 모두 가능한 멀티 플레이어였지만, 특별함이 부족했다. 주 포지션이 중앙 수비이긴 하지만, 체격조건이 뛰어나지 않았다. 오른쪽 풀백에서 뛰자니 부동의 이 용과 김영삼이 버티고 있었다. 현실은 2군이었다.

돌파구가 필요했다. 올시즌 임대를 떠났다. 행선지는 대전이었다. 임창우는 조진호 대전 감독의 총애를 받았다. 꾸준하게 출전기회를 보장받고 있다. 가장 큰 소득은 자신감 회복이었다. 그는 "대전에서 얻은 것은 자신감이다. 울산에선 경기를 못뛰어 위축됐는데 조진호 대전 감독님께서 출전 기회를 많이 부여해서 자신감을 회복할 수 있었다"고 했다.

임창우는 '운이 좋은 사나이'라고 해도 되겠다. 주목받는 선수가 아니었다. 세 번째 옵션이었다. 이광종 감독이 원했던 주전자원은 박준강(부산)과 최성근(사간도스)였다. 지난 6월 아시안게임 대표팀의 첫 소집 명단에 임창우의 이름은 없었다. 그런데 박준강이 부상을 했다. 아시안게임에 뛸 수 없게 됐다. 최성근도 대회 한 달 전 부상으로 몸 상태를 끌어올리는 중이었다. 임창우는 운좋게 태극마크를 달 수 있었다.

자신이 가진 장점을 모두 그라운드에 쏟아부었다. 우선 강철 체력이다. 조별리그 3경기와 토너먼트 4경기 등 7경기를 모두 소화했다. 물샐 틈 없는 수비는 기본이었다. 빠른 스피드를 살려 폭발적인 오버래핑을 보여줬다. 날카로운 크로스 능력도 갖췄다. 잡념도 버렸다. 그는 "노력도 많이했다. 자기 전부터 경기만 생각했다. 그 이미지트레이닝이 그라운드에서 맞아 떨어졌다"고 했다.

금메달은 임창우에게 더 큰 꿈을 꿀 수 있게 만들었다. 임창우는 "A대표팀 명단 발표 때도 '들어가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이젠 A대표팀 발탁에 욕심도 내고 싶다"고 전했다.

김진회기자 manu35@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