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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장혁 "내가 진지하다고? 알고 보면 재밌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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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장혁은 진지한 사람이다. 그를 만나본 많은 이들도 그렇게 말한다. 분위기를 환기시키려고 가벼운 농담을 던져봐도, 돌아오는 대답은 역시나 진지하다. 본인이 진지한 걸 아느냐고 물으니 "무슨 소리인가. 나는 무척 재밌는 사람이다. 마음만 먹으면 앞에 앉은 사람을 웃겨 쓰러뜨릴 수도 있다"고 '진지하게' 말한다. 이 말이 진심일까 아니면 진심 같은 농담일까.

평소 장혁이 어떨런지는 잘 모르겠지만, MBC 드라마 '운명처럼 널 사랑해'에서 장혁은 제대로 웃겼다.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널을 뛰었다'. 장혁이 이만큼 코믹 연기를 잘하는 사람이었던가? 호탕하면서 약간은 괴기스럽게 "음하하하하하하" 웃음을 터뜨리다가도 이내 진지하게 돌변해 절절하고 애틋한 로맨스를 선보였다. 남자들이 단명하는 내력을 지닌 재벌가의 안하무인 외아들, 하지만 누구보다 외롭고 마음이 여린 이건 캐릭터는 장혁으로 인해 펄떡펄떡 살아 숨쉬었다. "스크루지의 젊은 날을 상상하면서 캐릭터를 잡았어요. 기본적으로 그는 갇혀 있는 사람이니까. 주변 사람을 밀어내지만 한편으로는 누군가가 다가와주길 바라는 느낌을 표현하려고 했죠."

시청자들이 사랑한 이건 캐릭터는 적극적인 해석의 결과물이다. 예를 들어 극중 이건이 김미영(장나라)과의 하룻밤을 보낸 이후 정신과 상담을 받으며 독백을 쏟아내는 장면은 대본에선 코미디였지만, 장혁의 제안으로 진지하고 슬픈 장면이 됐다. "하룻밤 실수 때문에 인생이 꼬여버렸으니 얼마나 슬프고 답답하겠어요. 감독에게 제안해서 다른 방식으로 연기를 한 건데, 추후에 김미영을 상징하는 달팽이 CG도 넣었더라고요. 감독은 편집으로 전체적인 밸런스를 잡고, 저는 배우로서 제 역할 이상으로 넘어가지 않는 선에서 사전에 논의를 통해 연기톤을 잡았어요. 센스 있는 제작진을 만난 덕분에 즐거운 작업이 됐습니다."

장혁이 극찬한 제작진의 센스는 명장면을 여럿 탄생시켰다. 드라마 '추노' 패러디, 장혁의 TJ프로젝트 패러디, 달팽이 CG 위에 흐르는 이적의 노래 '달팽이' 배경음악, 화제의 떡방아신과 쌀보리신 등등. 장면만 떼 놓고 보면 만화 같기도 하다. 덕분에 '운명처럼 널 사랑해'는 흔하디 흔한 로맨틱 코미디 장르임에도 자신만의 독창적인 색깔을 갖게 됐다. "이동윤 감독이 저와 동갑이에요. 홍콩 영화와 일본 만화에 열광하던 세대죠. 그래서 패러디에서도 서로 공감하는 부분이 많았어요. 예컨대 주성치 영화나 '기쿠지로의 여름' 같은 영화를 보면 장르는 코미디인데 내용은 심각하잖아요. NG 장면도 과감하게 넣고요. 장르의 허용인 셈이죠. 저희 드라마도 형식을 깨는 시도를 했기 때문에 패러디도 넣을 수 있었고, 새로운 장르를 만들 수 있었던 게 아닌가 싶어요."

장르 개척, 새로운 시도. 장혁이 한번도 놓치지 않은 원칙들이다. 결과를 장담할 수 없거나, 때론 실패가 기다리고 있더라도, 장혁은 별로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래서 래퍼로 무대에 오른 TJ프로젝트 시절도 결코 '흑역사'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작품 외에는 대중을 만날 기회가 없다는 생각에 새로운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뮤직비디오를 기획하게 됐고, 그래서 무대에도 서게 됐던 것이라고 한다. 그 덕분에 가수들이 노래하고 공연할 때의 감정을 알게 됐으니, 분명 얻은 게 많았다는 게 그의 얘기다.

"누군가는 표면적인 것만 보고 실패와 성공을 말하겠지만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사람을 얻은 것도 득이고, 실패를 통해 단점을 극복하는 것도 득이에요. 그러면서 경험이 쌓인다는 건 무서운 거예요. 흐름만 놓치지 않으면 언젠가 그 잠재력을 폭발시킬 수 있으니까요."

장혁이 설명한 경험치와 잠재력의 또 다른 예가 있다. 매주 목요일마다 장혁은 집에서 재활용 쓰레기 분리수거 배출을 전담한다. 경력은 무려 7년. 스스로 '프로급'이라고 말한다. "보통 사람들이라면 두세 번 왔다갔다 할 만한 양인데도, 저는 한번에 처리할 수 있습니다. 이게 바로 포텐이 터진 거죠. 하하. 그러고 보니 오늘 목요일이네요. 이따가 재활용 쓰레기 버리러 가야 합니다. 하하." 인터뷰 말미에 박장대소. 그의 말대로, 그는 정말 재밌는 사람이었다. 김표향 기자 suzak@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