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오른쪽 눈은 앞이 잘 보이지 않을 정도로 이미 부어있었다. 4강전 혈투의 흔적이었다. 얼음찜질도 소용이 없었다.
그러나 눈 부상도 10년만에 종합대회 금메달을 노리는 한국 레슬링 그레코로만형의 '맏형' 정지현(31·울산남구청)의 의지를 꺾지 못했다. 정지현이 30일 인천 도원체육관에서 열린 그레코로만형 71㎏급 결승에서 투르다이에프 딜쇼드존(우즈베키스탄)을 꺾고 정상에 올랐다. 세 번째 아시안게임 도전만에 따낸 첫 금메달이다. 결승전은 1분 20초만에 9대0 테크니컬 폴승으로 끝이 났다.
오히려 4강전이 고비였다. 준결승 상대는 광저우아시안게임 챔피언이었던 '난적' 압드발리 사에이드(이란)였다. 정지현은 경기 초반 4점을 먼저 따내며 기선제압에 성공했다. 그러나 기술 성공과 동시에 상대에 목을 잡히며 세 번의 뒤집기를 허용했다. 순식간에 점수는 4-6으로 역전됐다. 한 번의 뒤집기를 더 허용해 4-8로 경기는 끝이 났지만 다행히 반칙을 주장한 한국 측의 챌린지(비디오 판독)로 판정을 번복하며 재경기가 이뤄졌다. 정지현은 2피리어드에서 힘을 냈다. 경기 종료 1분 47초를 남겨두고 정지현은 상대를 힘겹게 매트 위로 넘기며 4점을 획득 8-6으로 역전에 성공했다. 이어 사에이드가 챌린지를 신청했고 챌린지에 실패, 정지현이 1점을 추가로 획득했다. 경기는 그대로 끝이 났다. 짜릿한 9대6의 역전승이었다.
승리의 댓가는 컸다. 얼굴 곳곳에 긁힌 상처가 남았고, 상대의 머리와 수차례 부딪힌 오른쪽 눈두덩이는 피멍이 들고 부었다. 정지현은 4강전이 끝난 뒤 바로 의무실로 향했다. 얼음찜질로 눈이 붓는 것을 막고 결승전에 나서기 위해서였다. 소용이 없었다. 그는 잔뜩 부운 눈으로 결승에 임했다. 그리고 마침내 금메달을 따내며 지난 10년간 오르지 못했던 정상에 다시 섰다. 투혼이 빛난 값진 금메달이었다.
인천=하성룡 기자 jackiecha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