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레슬링 자유형이 2014년 인천아시안게임을 '노골드'로 마쳤다.
레슬링 자유형은 27일부터 29일까지 3일간 진행된 자유형에 11명(남자 7명, 여자 4명)을 출전시켜 은메달 1개, 동메달 6개 등 총 7개의 메달을 따냈다. 단 한 명의 결승 진출자만을 배출했고, '무명'의 오만호(울산남구청)가 은메달을 수확하며 '깜짝 스타'로 등극했다. 레슬링 자유형 '강호' 이란의 벽에 막혀 결승행이 좌절됐지만 동메달 결정전에서는 대부분 승리를 거두고 동메달을 대거 수확했다.
과거의 영예를 잊은지 오래다. 1980~1990년대 자유형은 한국 레슬링의 메달밭이었다 그러나 박장순 자유형 감독이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목에 건 이후 금맥이 뚝 끊겼다. 2000년대 중반 이후 레슬링이 침체기에 빠지면서 자유형이 입은 타격은 더 컸다. 2006년 도하아시안게임에서 그레코로만형이 4개의 금메달을 따냈 당시 자유형은 1개의 금메달을 따냈다. 2010년 광저우아시안게임에서는 은메달 1개를 수확하는데 그쳤다. 베이징올림픽과 런던올림픽에서 자유형은 '노메달'의 수모까지 겪었다. 반면 그레코로만형은 정지현(2004년) 김현우(2012년) 등 올림픽 챔피언을 배출하며 한국 레슬링의 '효자'로 자리매김했다.
이렇게 그레코로만형과 자유형의 입지가 뒤바뀐 것은 유망주 수와 관련이 있다. 예전에는 모든 선수가 자유형으로 레슬링을 시작해 일부가 그레코로만형으로 옮기는 식으로 레슬링을 배웠다. 하지만 2000년대 이후 그레코로만형이 국제무대에서 성적을 내고, 한국이 그레코로만형 강국으로 인식되면서 처음부터 그레코로만형으로 레슬링에 입문하게 되는 유망주들이 늘어났다. 가뜩이나 유망주가 적은 가운데 그레코로만형 편중현상이 지속되니 자유형의 경쟁력 약화는 불을 보듯 뻔했다. 반면 경쟁국들의 상황은 정반대다. 대한레슬링협회의 한 관계자는 "이란의 경우 레슬링 인구가 15만명 가까이 된다. 국제대회를 위해 대표선수를 1~4진까지 운영한다. 1진이나 4진이나 실력차가 적어 누굴 내보내도 우승권에 있다. 하지만 한국은 레슬링 선수가 3000여명밖에 되지 않는다. 1진과 2진 실력차도 크다"며 현실을 안타까워했다.
한국 레슬링 자유형은 인천아시안게임을 자유형 부활의 무대로 삼고 지옥 훈련에 매진했다. 결과적으로 목표로 삼은 금메달 획득에는 실패했다. 그러나 레슬링 자유형이 이번 대회를 통해 새로운 희망을 찾았다. 올해 아시아선수권대회에서 그레코로만형이 금메달 2개를 수확하는 동안 노메달에 그친 자유형은 이번 대회에서 총 7개의 메달을 따내며 발전된 모습을 보였다. 특히 처음 대표팀에 입성한 윤준식(삼성생명) 오만호 이상규(부처시청) 등이 잇따라 메달 소식을 전해 세대교체의 성공을 알렸다. 또 자유형 부진의 원인 중 하나였던 선수들의 투지와 기술이 되살아났다. 이상규는 8강에서 의치가 2개 부러지는 고통을 참아내고 승리를 거둬 감동을 안겼다. 또 4강전에서 팔꿈치 부상을 하고도 동메달 결정전에서 동메달을 따내 박수갈채를 받았다. 박 감독은 대회 직전 발목을 다쳐 걷기도 힘든 상황이었지만 대회 기간 내내 경기장을 분주히 뛰어 다니며 자유형 부활을 위해 투혼을 발휘했다. 이밖에 하체 태클 공격 횟수가 늘어나는 등 선수들의 경기력도 세계수준에 근접했다. 대한레슬링협회 관계자는 "런던올림픽과 비교해보면 선수들의 공격력이 정말 좋아졌다. 예전에는 서서 경기를 했다면 지금은 태클을 기본으로 움직이는 레슬링을 한다. 발전하고 있다는 증거다"라고 말했다. 결과적으로 아시안게임 2개 대회 연속 금메달을 따내지 못한 레슬링 자유형의 부활은 실패했다. 그러나 부활을 위한 과정을 차근차근 밟고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인천아시안게임에서 변화를 확인했다. 이제 결과물을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에서 기대해볼 수 있을 것 같다. 인천=하성룡 기자 jackiecha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