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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노의 베이스볼터치] 재현될 뻔한 참사, 잊지 말아야 할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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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반부터 분위기가 묘했습니다. 처음엔 '에이, 설마'라는 분위기였지요. 하지만 점차 '참사'가 재현되는 게 아닌가 하는 걱정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경기 중반까지만 해도 28일 인천 문학구장 기자실과 취재석에 있는 모두가 2006년 도하아시안게임 참사를 떠올렸지요. 모두들 입 밖으로 내뱉지 않아도 그런 분위기인 건 분명했습니다.

대한민국 야구가 힘겹게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따냈습니다. 프로 선수가 참가한 다섯번째 대회, 이변 없이 네번째 금메달을 목에 걸었습니다. 1998년 방콕아시안게임 이후로 2006년 대회를 제외하면, 매번 한국 야구는 수상대 맨 위에 올라섰습니다.

조별예선 3경기를 너무 쉽게 끝내서일까요. 준결승부터 '위기'는 있었습니다. 한 수 아래라고 생각했던 중국을 맞아 5회초까지 2-2로 고전했지요. 5회말 주장이자 4번 타자인 박병호의 허를 찌르는 도루가 시발점이 돼 역전에 성공하며 승기를 잡았습니다. 5회 박병호와 나성범의 발로 만든 2득점이 없었다면, 어땠을까요.

대표팀 선수들은 "예선을 너무 쉽게 와서 오늘 같은 경기가 있었다"며 반성을 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금메달이 달린 결승전에서도 고전은 계속 됐습니다. 1회초부터 무사 만루 기회를 얻었으나, 중심타선이 대만의 대학생 투수 궈진린을 공략하지 못해 끌려갔지요. 게다가 메이저리그 진출을 노리는 한국의 에이스 김광현도 끝내 재역전을 허용하고 말았습니다.

야구는 흐름의 스포츠입니다. 단기전 전체의 흐름이 있을 것이고, 한 경기 안에서의 흐름이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대표팀은 예선 3경기의 승리에 취해 자칫 일을 그르칠 뻔했습니다.

대만의 두번째 투수 천관위는 예선전에 이어 또다시 한국 타자들을 손쉽게 공략해갔습니다. 그런데 8회초 들어 민병헌과 김현수의 안타, 그리고 대만 벤치의 천관위 강판이라는 악수가 나오면서 극적으로 흐름이 바뀌었습니다.

안지만의 '금빛 역투'와 황재균의 2타점 쐐기타가 결승전 하이라이트를 장식했습니다. '약속의 8회'라는 말도 다시 나왔죠. 하지만 흐름이 넘어오기 전까지는 분명 '참사'나 '졸전'이란 말을 떠올릴 수 있는 경기였습니다. 게다가 스트라이크존과 아웃-세이프 판정 등에서 보이지 않는 홈 어드밴티지도 있었습니다.

대만 선수들이 억울함을 호소할 수 있는 장면도 많았지요. 하지만 그들은 이미 홈팀의 이점을 고려한 듯, 심판을 자극하지 않았습니다.

금메달을 폄하하고자 하는 건 아닙니다. 이번 금메달은 대표팀 세대교체의 신호탄이 될 수 있어 더욱 반가운 게 사실입니다. 하지만 금메달이나 병역 혜택의 달콤함에 취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경기가 끝난 뒤, 김현수를 비롯한 몇몇 선수들은 태극마크의 남다른 의미를 강조했습니다. 선수들이 군문제 해결 등 특혜만을 위해 뛰는 게 아니라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는 일부 선수들에게 해당되는 얘기일 지도 모릅니다. 금메달을 목에 걸기까지 힘겨웠던 순간들, 그동안 흘린 땀의 의미를 잊는 선수들이 나올 수도 있습니다.

이제 24명의 선수들은 소속팀으로 돌아갑니다. 하지만 2008년 베이징올림픽 금메달 이후 대표팀에 개근하고 있는 김현수처럼 태극마크의 무게감을 잊지 말았으면 합니다. 프로야구, 혹은 해외 리그에서의 활약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그들은 한국 야구의 '미래'니까요.

스포츠1팀 nirvana@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