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수는 뛰어야 한다.
그라운드가 아닌 벤치에서는 숨을 쉴 수 없다. 자신의 기량을 증명해야만 가치가 있다. 때문에 경쟁을 피할 수 없다. 태극마크의 영광도 마찬가지다. 그라운드에서 자신의 기량을 펼쳐 보일 때에만 주어질 수 있는 영광이다.
울리 슈틸리케 A대표팀 감독의 입장은 단호했다. "선수는 경기에 뛰는 게 중요하다. 팀을 찾고 감각도 끌어 올린 뒤에야 (A대표팀) 선발을 고려해 볼 수 있다. 팀을 찾지 못하고 경기력도 떨어져 있는 상황에서 대표팀 선발을 논하는 것은 부정적이다." 28일 1기 선발 명단을 발표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유럽 일선에서 활약 중인 선수들을 걱정하지 않는다. 해외에 진출해 경기에 뛰지 못한 채 벤치에 앉아 있는 선수들을 걱정하고 있다." 경쟁을 요구하는 압박이었다.
박주영(29)이 움직이고 있다. 알샤밥이 손을 내밀고 있다. 사우디에서 기자로 활동 중인 파이살 알사우드는 30일(한국시각)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박주영이 알샤밥과 계약을 앞두고 있다'고 전했다. 알사우드 기자는 '알샤밥은 나이프 하자지와 짝을 이룰 아시아 출신 공격수를 찾고 있다'며 '박주영과 함께 요르단 출신의 아흐마드 하일을 놓고 검토 중'이라고 덧붙였다.
알샤밥은 알힐랄, 알이티하드와 함께 사우디 리그를 대표하는 명문팀이다. 1947년 창단했으며, 한때 곽태휘(알힐랄)가 활약했던 팀으로도 국내에 잘 알려져 있다. 올 시즌 리그 6경기를 치른 현재 승점 16으로 4위를 기록 중이다.
중동행에 미온적이었던 박주영에게도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박주영은 최근 지인들을 통해 중동 리그 여건에 대한 조언을 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2014년 브라질월드컵 본선을 전후해 이어진 사우디아라비아, 쿠웨이트의 러브콜을 한사코 거절했던 이전의 모습과는 달라졌다. 돌파구가 보이지 않는 유럽 도전의 마음이 중동으로 기울고 있다.
슈틸리케 감독의 한 마디는 박주영의 긴 고민을 흔드는 열쇠가 됐을 것으로 보인다. 태극마크를 향한 열망은 여전하다. 박주영은 그동안 그라운드에서 실력으로 말하길 원해왔다. 못다 이룬 꿈도 있다. 2015년 호주 아시안컵이다. 반세기 동안 태극전사들의 품에서 멀어진 아시아 정상의 자리, 박주영의 열망도 맞닿아 있다. 태극마크를 다시 달기 위해 우선 필요했던 것은 새 둥지 찾기다. 현실적인 대안을 찾아가고 있다.
박주영의 실전 감각은 '바닥'에 가깝다. 2013년 셀타비고(스페인) 임대 생활을 마친 뒤 아스널로 복귀해 돌파구를 찾지 못했다. 지난 2월 왓포드 임대가 전환점이 될 것으로 보였다. 하지만 부상이 발목을 잡았다. 조기 귀국해 A대표팀에 합류, 브라질월드컵을 준비했다. 그러나 조별리그 2경기서 떨어진 경기 감각을 극복하지 못했다. 지난 6월 23일 브라질 포르투알레그리에서 열린 알제리와의 브라질월드컵 조별리그 2차전이 마지막 실전 출전이었다. 이마저도 벌써 3개월을 넘겼다. 박주영은 새 둥지 찾기가 길어지자 친정팀 FC서울의 훈련장인 구리챔피언스파크에서 몸 만들기에 열중하고 있다. 하지만 훈련과 실전에는 차이가 있다. 더 이상 지체할 시간이 없다.
박상경 기자 ppark@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