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은 비켜가지 않았다.
28년 만의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노리는 한국 축구가 '외나무 다리'에서 숙명의 라이벌을 만났다. 한-일전이다. 한 팀은 눈물을 흘려야 하는 '단두대 매치'다. 28일 오후 5시 인천 문학경기장에서 휘슬이 울린다. 2014년 인천아시안게임 8강전, 4강 진출을 위해서는 무조건 일본을 넘어야 한다.
일본은 4년 전 광저우 대회에서 아시안게임 사상 처음으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한국은 동메달에 머물렀다. 세월을 되돌려 놓아야 한다. 아시안게임에서 3회 우승한 한국의 마지막 환희는 1986년 서울 대회였다. 1990년 베이징(3위)→1994년 히로시마(4위)→1998년 방콕(8강)→2002년 부산(3위)→2006년 도하(4위)→2010년 광저우(3위), 돌고 돌았지만 정상 문턱에서 쓸쓸하게 발걸음을 돌렸다.
한국과 일본, 우여곡절은 있었지만 이변없이 8강에 올랐다. 3전 전승으로 조별리그를 통과한 이광종호는 25일 경기도 고양종합운동장에서 벌어진 홍콩과의 16강전에서 3대0으로 승리했다. 조별리그도 그랬지만 그라운드는 '비정상'이 수놓았다. 전반전 슈팅수가 16대0이었다. 그러나 골망은 움직이지 않았다. 두드리고, 두드리고 또 두드렸지만 골문은 열리지 않았다. 20번째 슈팅 만에 마침내 빗장이 풀렸다. 후반 13분이었다. 부상한 김신욱(울산)의 백업 이용재(나가사키)가 드디어 첫 골을 터트렸다. 이재성이 아크 오른쪽에서 낮게 올린 크로스를 김영욱이 가슴으로 떨궈주자 페널티박스 오른쪽에서 그대로 오른발슛으로 연결, 골망을 갈랐다. 후반 31분에는 '27세의 와일드카드(24세 이상 선수) 맏형' 박주호(마인츠)가 환상적인 중거리포로, 경기 종료 직전에는 김진수가 호쾌한 왼발슛으로 8강행을 자축했다.
일본은 D조 2위로 16강에 올랐다. 쿠웨이트(4대1 승), 네팔(4대0 승)에 대승을 거뒀지만 강호 이랑크에 1대3으로 완패했다. 16강전에선 C조 1위 팔레스타인을 4대0으로 요리했다. 일본은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을 대비, 21세 이하 선수들로 진용을 꾸렸다. 와일드카드(24세 이상 선수)가 없다. 경험은 떨어지지만 일본 축구 특유의 섬세한 전술을 구사한다. 조직력과 개인기량도 뛰어나다.
아시안게임에서 한-일전은 6차례 열렸다. 한국이 5승1패로 앞서 있다. 가장 최근 만남은 1998년 방콕 대회였다. 최용수(FC서울 감독)의 멀티골을 앞세워 2대0으로 승리했다. 그러나 당시는 A대표팀이 출전했다. 23세 이하 팀간의 대결에선 5승4무4패로 호각지세다. 한국이 박빙우세 하지만 결코 만만하게 볼 상대가 아니다.
8강전부터 '밀집수비'는 사라진다. 정상적인 흐름의 경기가 예상된다. 태극전사들은 조별리그와 16강전은 머릿속에서 지워야 한다.
일전까지 시간이 많지 않다. 그래도 반드시 풀어야 할 숙제가 있다. 공격의 섬세함이다. 김신욱이 8강전에서 돌아오지만 30분 정도 밖에 뛸 수 없다. 원톱 이용재, 섀도 스트라이커 김승대(포항), 좌우 측면 이재성(전북)과 김영욱(전남) 조합이 재가동될 가능성이 높다.
섬세함을 끌어올리기 위해서는 단조로운 패턴에서 탈출해야 한다. 홍콩전에선 중원 2대1 패스에 이은 측면만 고집했다. 첫 골이 터지기 전까지 19차례의 슈팅 가운데 결정적인 찬스는 3차례에 불과했다. 경기 템포 조절에도 노련미가 필요하다. 반박자 빠른 타이밍의 슈팅과 패스가 요구되는 상황에서도 예측 가능한 플레이로 일관하며 기회를 허공으로 날렸다.
공수밸런스의 안정도 중요하다. 일방적인 공격 축구는 더 이상 없다. 일본을 21세 이하 팀이라고 무시하면 큰 코 다친다. 일진일퇴의 공방이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공격과 수비가 톱니바퀴처럼 움직여야 일본을 제압할 수 있다.
가깝고도 먼나라 일본, 그라운드에서 함께 서는 순간 전쟁이다. 아시안게임 4회 연속 4강 진출, 그 제물은 일본이다. 고양=김성원 기자 newsme@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