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태환의 3번째 인천아시안게임이 막을 내렸다.
길고 긴 일주일이었다. 21일 첫종목인 자유형 200m 하기노 고스케 , 쑨양에 이어 동메달을 목에 걸었다. 22일 후배들과 함께 나선 800m 계영에서 한국최고기록을 수립하며 2번째 동메달을 획득했다. 23일 자신의 주종목인 400m에서 쑨양, 하기노에 이어 3번째 동메달을 획득했다. 24일 계영 400m에서 후배들과 힘을 합쳐 또다시 한국최고기록으로 4번재 동메달을 합작했다. 25일 자유형 100m 결선, 박태환의 스트로크가 한결 가벼워졌다. 아시아기록보유자 닝저타오에 이어 2위로 터치패드를 찍었다. 48초75의 호기록이었다. 박태환의 수영이 돌아왔다. 은메달을 목에 걸고 웃었다. 광저우아시안게임에서 48초70의 대회 신기록(한국 기록)으로 금메달을 목에 걸었던 박태환은 대회 2연패에는 실패했지만 한국 선수 최다 메달리스트에 이름을 올리며 아쉬움을 달랬다. 박태환은 총 19개(금메달 6개, 은메달 3개, 동메달 9개)의 메달로 사격의 박병택(금메달 5개, 은메달 8개, 동메달 6개)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
경영 경기 마지막날인 26일 박태환은 자유형 1500m, 혼계영 400m,에 나섰다. 1500m에서는 4위에 머물렀지만, 최규웅 박선관 장규철 등 절친들과 함께한 혼계영에서 3위에 올랐다. 스무번째 메달을 목에 걸었다. 한국 아시안게임 역대 최다 메달리스트 기록을 경신했다.
박태환은 "가장 많은 메달을 따게 돼 기분이 좋다. 1500m에서 하나 더 땄으면 좋았을 텐데 미흡한 부분이 있었다"라고 말했다. "값진 메달을 따고 기록을 남기게 돼 영광이다, 다음번에 또 나가게 된다면 더 많은 메달을 따고 싶다"는 희망을 밝혔다.
박태환에게 아시안게임은 언제나 힐링이었다. 2004년 아테네올림픽에서 실격의 아픔을 맛본 17세의 '마린보이' 박태환은 2006년 3관왕(자유형 200-400-1500m)에 오르며 마음을 치유했다. 도하에서 금메달 3개 이외에 자유형 100m 은메달과 3개의 동메달(400m 계영, 800m 계영, 400m 혼계영)을 추가했다. 2009년 로마세계선수권에서의 예산 탈락 충격은 2010년 광저우아시안게임으로 만회했다. 박태환은 광저우에서 '3관왕 2연패'를 달성하며 '레전드 반열'에 올랐다. 광저우에서도 메달 행진은 멈추지 않았다. 3개의 금메달 이외에 1500m와 400m 혼계영에서 2개의 은메달을 추가했다. 동메달도 2개(400m 계영, 800m 계영)를 따냈다. 두 번의 아시안게임에서 14개의 메달을 수집하는 '초스피드' 메달 레이스를 펼쳤다. 2012년 런던올림픽 실격 이후 맞이한 인천아시안게임, 동메달 4개(200m, 400m, 400m 계영, 800m 계영)를 따낸 박태환은 100m에서 특유의 막판 스퍼트로 2명을 제치며 값진 은메달을 추가했다. 마지막날 동메달 하나를 추가하며 박태환의 세번째 아시안게임이 막을 내렸다.
27일은 박태환의 생일이다. 인천문학박태환경기장에서 다사다난했던 자신의 3번째 아시안게임을 마감하고, 가족과 함께 힐링의 시간을 갖는다. 인천=전영지 기자 sky4us@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