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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노의 베이스볼터치]'국제적 기계' 김현수의 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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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아시안게임 야구대표팀은 최종 명단 발표 때부터 '경험 부족'이라는 우려를 샀습니다. 하지만 대표팀엔 '믿는 구석'이 있었죠. 국제대회만 되면 맹타를 휘두르는 김현수(26)도 그 중 한 명입니다.

대표팀 부동의 3번 타자 김현수는 2008년부터 굵직한 국제대회에 모두 참가했습니다. 2008년 베이징올림픽을 시작으로 2009년 제2회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2010년 광저우아시안게임, 2013년 제3회 WBC까지, 타자 중에선 안방마님 강민호 다음으로 대표팀 경력이 많지요.

김현수는 총 네 번의 국제대회에서 통산 타율 4할, 15타점을 기록했습니다. 홈런 한 방은 없었지만, 해결사 역할을 한 건 분명합니다. '타격 기계'란 명성에 걸맞은 활약이었지요.

국제대회에서도 빛을 발하는 그의 타격 재능, 비법이 궁금했습니다. 대회가 열리기 전 대표팀 훈련 때 김현수는 의외로 간단한 답을 내놓더군요. 바로 '적극성'이었습니다.

자신의 공격적 성향과 국제대회에서 상대 투수의 직구 구사 비율이 높았던 게 잘 맞아 떨어진 결과라고 설명하더군요. 심플하면서도 이번 대회에 임하는 한국 타자들이 어떤 마음가짐을 가져야 할 지 보여주는 '명쾌한 해법'이었죠.

솔직히 24일 대만전은 걱정이 됐습니다. 지난해 WBC 때 우리는 낯선 네덜란드 투수에게 당한 경험이 있습니다. 전력분석을 충분히 했는데도 잘 맞은 타구가 야수 정면으로 향하는 등 소위 '말리는' 현상을 겪으면서 초반 분위기를 내줬고, 끝내 경기를 뒤집지 못했습니다.

야구는 아무리 쉬운 상대라도 방심할 수 없습니다. '어, 어…' 하다가 순식간에 볼카운트가 불리해지고, 그렇게 물러난 타석이 쌓이면서 이닝이 금방 흘러갑니다. 국제대회에서는 말린다는 말이 나오는 순간, 큰 위기지요.

금메달의 분수령이 될 대만전에서도 마찬가지 상황이 연출될까 걱정된 게 사실입니다. 하지만 경험이 부족하다던 대표팀은 1회부터 화끈한 타격을 선보이며 콜드게임으로 대만을 제압했습니다.

사실 대회 첫 경기인 태국전을 비롯해 대만전에서도 김현수의 가치는 빛났습니다. '홈런쇼'에 묻혔지만, 존재만으로도 대표팀에 큰 힘이 된다는 사실을 보여줬지요.

모두가 얼어붙을 수 있는 순간. 김현수는 테이블세터가 만들어준 찬스를 가볍게 해결했습니다. 김현수가 물꼬를 터주자 대표팀은 순조롭게 공격의 활로를 찾았지요.

태국전 1회말 무사 1,2루에서 나온 적시 2루타. 그리고 대만전 1회말 무사 1,2루에서 터진 중견수 키를 넘기는 2타점 2루타. 사실 이 안타들이 없었다면, 대표팀은 쉽지 않은 경기를 펼칠 수도 있었습니다. 말리는 걸 막아준 게 바로 김현수였죠.

류중일 감독은 첫 경기 태국전 직전 라인업을 바꿔 김현수를 다시 원래의 위치인 3번 타자로 내보냈습니다. 당초 류중일 감독은 6번을 생각했습니다. 이게 '신의 한 수'가 된 모습이네요. 경험 많은 김현수가 앞에서 풀어주자 나머지 타자들도 부담감 없이 타격을 할 수 있었습니다.

훈련이나 선수촌 생활에서도 김현수는 경험에서 우러나온 '편안함'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몇몇 선수들이 잔뜩 얼어 있던 시기. 김현수는 특유의 입담으로 긴장을 풀어주고, 선수촌에서는 준비해온 노트북에 대만의 전력분석 영상을 틀어놓는 등 방에 '미니 전력분석실'을 차려 타자들을 도왔습니다.

김현수가 가진 여유로움의 이유를 알았습니다. 그는 국제대회를 즐기고 있었습니다. 아직도 20대인 김현수, 그가 있기에 한동안 '경험'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것 같네요. 스포츠 1팀 nirvana@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