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대포는 역시 강했다. 시원한 홈런포로 극적인 승리를 선사해 온 야구 대표팀의 전통은 살아있었다.
그동안 한국은 주요 국제대회에서 홈런을 앞세워 인상적인 경기를 펼쳤다. 국제대회와 같은 단기전에서는 홈런포가 승부를 가르는 경우가 많다. 2006년과 2009년 월드베이스볼클래식이 그랬고, 2008년 베이징올림픽이 하이라이트였다. 그 중심 인물은 이승엽이었다. 베이징올림픽에서 이승엽은 일본과의 준결승, 쿠바와의 결승전에서 승부를 가르는 결정적인 홈런을 때리며 '국민타자'의 위용을 유감없이 드러냈다.
인천아시안게임 야구대표팀이 대만과 B조 예선 두 번째 경기를 펼친 24일 인천 문학구장. 관중석을 가득메운 팬들은 또다른 '이승엽'을 기다렸다. 류중일 감독 역시 대표팀의 강점인 묵직한 타선이 폭발하기를 무엇보다 바랐다. 홈런포에 대한 갈증이 컸다. 지난 22일 태국과의 첫 경기에서 15대0으로 5회 콜드게임 승을 거뒀지만, 홈런은 터지지 않았다.
경기전 대만 투수들이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전력분석팀의 '경고'가 있었던 터라 홈런이 더욱 필요했다. 대표팀 타선에는 굵직한 거포들이 즐비해 기대감도 높았다. 정규시즌서 박병호가 48개의 홈런을 때렸고, 강정호가 38개, 나성범이 29개, 나지완이 19개를 기록했다. 아시안게임 야구가 열리고 있는 문학구장에서는 손아섭이 3개, 나성범 강민호 강정호가 각각 2개, 민병헌과 박병호가 1개의 홈런을 각각 기록했다. 홈런만이 살 길인 상황에서 대표팀 타자들의 방망이는 초반부터 불을 뿜었다.
1회 김현수의 2루타로 2점을 먼저 뽑은 대표팀은 계속된 무사 2,3루서 강정호가 좌월 3점홈런을 터뜨려 5-0으로 달아났다. 볼카운트 2B2S에서 대만 선발 왕야오린의 가운데 높은 144㎞짜리 직구를 받아쳐 왼쪽 담장을 훌쩍 넘겼다. 왕야오린은 결국 마운드를 내려갔고, 1회 한 명의 타자도 아웃을 당하지 않은 상황에서 한국은 분위기를 장악했다.
한국의 1회 공격은 그대로 끝나지 않았다. 계속된 2사 1루에서 이번에는 9번 타자 오재원이 일을 냈다. 대만의 두 번째 투수 쩡카이원과 9구까지 가는 접전을 벌인 끝에 146㎞짜리 가운데 직구를 통타해 라인드라이브로 오른쪽 펜스를 넘겼다. 7-0의 넉넉한 리드, 승부는 사실상 1회에 갈렸다.
초반의 대포 축제에서 대표팀 주장이자 4번을 맡고 있는 박병호가 빠질 수 없었다. 박병호는 태국전에서 2안타를 때렸지만, 첫 타석에서 삼진을 당하는 바람에 체면을 구긴 적이 있다. 이날 대만전을 앞두고도 승부의 '키'로 박병호가 꼽힐 수 밖에 없었다. 박병호는 1회 첫 타석에서도 공을 방망이 중심에 맞히지 못했다. 그러나 박병호는 2회 1사후 두 번째 타석에서 그동안 쌓인 걱정을 한움큼 덜었다. 큼지막한 대포를 쏘아올리며 류 감독의 갈증을 풀어줬다. 쩡카이원을 상대로 초구 127㎞짜리 변화구를 통타해 가운데 담장을 넘겼다. 비거리는 130m로 측정됐다. 소속팀 넥센 히어로즈의 홈인 목동구장의 전광판을 넘겼던 바로 그 힘이 느껴진 홈런이었다.
이날 3방의 홈런이 의미하는 바는 작지 않다. 한국의 금메달 행보가 더욱 탄력을 받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목표는 준결승과 결승이다. 준결승에서는 한 수 아래의 중국을 만날 공산이 커 부담이 없지만, 결승에서는 대만을 다시 만날 수 있고 투수진이 탄탄한 일본을 상대할 수도 있다. 결승에서는 조별 예선과는 다른 집중력이 전체적으로 필요하다. 경기가 한 두 점차로 승부로 흐를 가능성이 높다. 결정적인 순간, 이날 대만전서 비로소 폭발한 홈런포가 필요할 수 있다. 인천=노재형 기자 jhno@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