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아시안게임 한국 야구대표팀은 24일 B조 예선 두 번째 경기에서 최대 난적으로 여겨졌던 대만을 가볍게 물리치고 2승째를 올렸다. 초반부터 타선이 불을 뿜었다. 그런데 이날 대만은 한국 대표팀이 예상했던 투수를 선발로 내지 않았다. 대만의 선발 원투펀치는 미국 마이너리그에서 활약하고 있는 쟝샤오칭과 후즈웨이다. 또 일본 프로야구에서 뛰고 있는 천관위(요코하마 DeNA)도 이들과 비슷한 실력을 지니고 있어 대표팀의 분석 대상이었다.
그러나 대만 루밍츠 감독은 다른 카드를 꺼내들었다. 시카고 컵스 산하 싱글A 소속의 왕야오린을 내세웠다. 왕야오린은 대만 언론에서도 한국전 선발로 언급된 투수가 아니었다. 당연히 한국 대표팀은 쟝샤오칭 등 에이스급 투수들에 대한 분석에 집중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왕야오린은 올시즌 26경기에서 4승7패, 평균자책점 5.57을 기록했다. 선발로는 11경기에 등판했다. 선발과 중간을 오가는 전천후 투수로 활약한 셈이다. 왕야오린에 대해서는 직구 구속이 150㎞를 웃돌고, 슬라이더와 커브, 체인지업 등 변화구도 수준급이지만, 제구가 높다는 것이 단점으로 지적되기도 한다. 그러니 객관적으로 최강 전력을 지닌 한국전 선발로는 의외의 선택이었던 셈이다.
왕야오린은 1회말 아웃카운트를 단 한 개도 잡지 못하고 5점을 준 뒤 마운드를 내려갔다. 루밍츠 감독이 왕야오린을 선발로 올린 이유가 한국 대표팀이 전혀 대비하지 않았을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이라면, 결과적으로 완전히 빗나간 용병술이나 다름없다. 투구 내용이 너무나도 형편없었다. 직구 구속은 최고 144㎞에 머물렀고, 변화구 구사도 엉성해 보였다. 특히 공이 전체적으로 높았다. 피안타 4개 모두 가운데 또는 높은 코스로 몰려 얻어맞은 것이었다.
왕야오린에 이어 마운드에 오른 쩡카이원이 1회에 2점을 추가로 내줘 대만은 사실상 경기를 포기하는 단계에 이르고 말았다. 그렇다면 예상 밖의 선발투수를 낸 대만의 속셈은 무엇일까.
또 다른 측면으로는 한국을 넘을 수 없는 '산'으로 인정하고는 오로지 준결승에 대비해 최정예 투수들을 아꼈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A,B조 각 1,2위 팀들이 준결승에 오르는데, B조 2위가 되면 A조 1위가 확실시되는 일본과 붙게 된다. 결국 이날 한국전 패배로 조 2위가 된 대만은 준결승에서 후즈웨이, 쟝샤오칭 등 에이스급 투수들을 총동원할 것으로 예상된다. 어차피 일본을 넘어야 결승에 오르기 때문에 준결승에서 모든 것을 걸어야 하는 입장이다. 이럴 경우 이날 한국전 세 번째 투수로 등판한 왼손 천관위가 결승전에 나설 수 있다. 천관위는 지난 22일 예선 첫 경기인 홍콩전에서 3이닝 퍼펙트 투구를 펼쳤다.
즉, 대만은 당초 조별 리그 한국전을 크게 벼르고 있었던 것 같지는 않아 보인다. 루밍츠 감독은 하루 전인 23일 태국전을 7회 콜드게임승으로 마친 뒤 "한국은 강팀이다. 한국전 대비를 위해 경기를 일찍 끝내고자 했다. 한국전 선발에 대해서는 공개할 수 없다"며 경계심을 드러냈지만, 이날 실제로 보여준 것은 거의 없었다. 인천=노재형 기자 jhno@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