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미안해 죽겠네."
20일 고양실내체육관에서 펼쳐진 인천아시안게임 남자에페 결승에서 후배 박경두를 누르고 금메달을 따낸 남자에페 대표팀 맏형 정진선의 첫마디는 이랬다. 먼저 믹스트존 인터뷰를 마친 박경두를 바라보며 미안함을 감추지 못했다. 런던올림픽 동메달리스트, 아시아 톱랭커 정진선과 카잔세계선수권 최초의 에페 개인전 은메달리스트 박경두의 진검승부였다. 형이 아우를 15대9로 꺾었다.
정진선은 남자펜싱 대표팀의 역사다. "결승 진출에 만족했다. 경두와는 함께 대표팀에서 한솥밥을 먹은지도 오래됐고, 부담없이 경기한 것이 도움이 됐다"고 했다. 서른살 백전노장 정진선은 도하, 광저우에서 단체전 금메달 2연패를 달성했지만 개인전 금메달은 이번이 처음이다. "도하, 광저우때는 개인전에서 뛸 기회를 받지 못했다. 이제 개인전을 뛸 수 없나 생각했을 때 기회가 찾아왔다. 열심히 준비했다"고 말했다. "훈련량이 정말 많았고 정말 힘들었다. 새벽 5시30분부터 밤 9시 까지 펜싱만 했다. 숙소에 가면 쓰러져자고 눈 뜨면 운동하는 생활을 반복했다. 오로지 훈련만 했다. 휴대폰 들여다볼 시간도 없었다"고 했다. 금메달 순간 그간의 힘든 일들이 한꺼번에 밀려와 눈물이 핑 돌았다. "정말 훈련을 힘들게 했다. 메달을 못따면 어쩌나, 심리적 부담도 만힝 됐다. 그런 게 한꺼번에 밀려오면서 울컥 했다"고 했다. "고참인데 눈물을 보이면 안되니까, 꾸욱 참았다"며 웃었다.
런던올림픽 동메달 이후 다시 스스로를 채찍질하며 마음을 잡는 일이 쉽지 않았다. 슬럼프로 있었다. 거침없이 치고올라오는 후배들에게 쓰라린 패배도 경험했다. 에이스 정진선의 플레이를 연구하는 세계의 라이벌들이 늘어나면서 견제도 심해졌다. 그만큼 배가된 노력을 필요로 했다. "내가 나가면 당연히 잘할 것으로 기대하시는 분들이 많았다. 심적으로 많이 힘들 때도 있었지만, 그런 기대를 역이용해 좋은 에너지로 삼았다"고 말했다.
펜싱 코리아가 안방에서 열린 아시안게임 첫날 여자사브르와 남자에페에서 금메달 2개, 은메달 2개를 획득했다. 정진선은 사상 최고 성적을 예언했다. 한국 펜싱대표팀은 4년전 광저우에서 금메달 7개를 획득했었다. "이번에 9개 정도는 딸 것같다"며 자신감을 드러냈다. 아시아선수권에서와 마찬가지로 남자에페 단체전에서 금메달을 목표삼고 있다. 정진선은 "우리가 단체전은 정말 강하다. 그러나 자신감 있게 하되 자만심은 경계하려 한다. 나와 박경두를 비롯해 박상영, 권영준 등 후배들의 몸 상태가 아주 좋다"며 2관왕에 자신감을 표했다.
금메달 직후 가장 먼저 생각난 사람은 헌신적인 부모님과 양달식 화성시청 감독을 비롯한 코칭스태프들이다. "나이 많으신 부모님이 오신다는 걸 오지말라고 했다. 오시면 신경이 많이 쓰일 것같았다. 혹시 금메달을 못따면 실망하실까봐 걱정됐다"고 털어놨다. "양 감독님은 나보다 더 긴장하셨는지, 카톡을 수도 없이 보내셨다. 훈련하느라 답장도 드리지 못했다. 이제 전화드려야겠다"며 싱긋 웃었다.
이날 한솥밥 결승전이 펼쳐진 고양실내체육관엔 만원관중이 몰려들었다. 매표소앞에 펜싱 팬들이 늘어선 진풍경이 연출됐다. 정진선은 "콘서트가 있는 줄 알았다. 정말 깜짝 놀랐다. 국민들이 이제 펜싱을 보러 와주신다는 것이 뿌듯하다. 비인기종목에서 인기종목으로 가고 있는 것같다"며 기쁨을 표했다. 인천=전영지 기자 sky4us@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