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유도의 '간판스타' 김재범(29·한국마사회)에게 부상은 운명이다. 2012년 런던올림픽에서는 한 팔과 한 다리로 세상을 메쳤다. 왼쪽 몸이 문제였다. 왼쪽 무릎 인대 부상으로 무릎이 덜렁덜렁거렸다. 습관성 왼쪽 어깨 탈골에다 팔꿈치 인대 손상을 입었고 왼쪽 네번째 손가락 인대는 아예 끊어졌다. 왼팔과 왼다리로는 힘을 쓰지 못했다. 거들 뿐이었다. 고통을 참기 위해 마취제를 맞고 경기장에 나섰다. 그럼에도 김재범은 런던에서 금빛 메치기에 성공하며 개인 커리어 그랜드슬램(올림픽, 세계선수권, 아시안게임, 아시아선수권)까지 차지했다.
2008년 베이징대회부터 시작된 김재범의 메이저대회 부상 징크스는 2014년 인천아시안게임에서도 유효하다. 2010년 광저우아시안게임 금메달에 이어 아시안게임 2연패에 도전하는 김재범은 이번에도 부상과 싸운다.
인천아시안게임을 위해 훈련에 매진하다가 왼쪽 세 번째 손가락의 인대가 또 끊어졌다. 테이핑을 하지 않으면 손가락을 구부리기도 힘들다. 런던올림픽에 나설 당시보다 손가락 부상은 더 심각하다. 나머지 손도 성한데가 없다. 유도복을 강하게 잡느라 열손가락이 모두 'S'자로 휘었다. 다른 선수들보다 유도 스타일이 격해 손 변형이 심하다. 이제 더이상 약이 들지 않아 변형 속도가 빨라졌다.
그러나 지독한 연습벌레인 김재범에게 부상과 손가락 변형은 자신의 훈련강도를 증명하는 훈장이고, 걱정이 아닌 극복의 대상일 뿐이다. 김재범은 "선수라면 부상은 누구나 다 있는 것이다. 메이저대회만 있으면 부상을 하게 된다. 이번 인천아시안게임을 앞두고도 분명히 부상할 것이라 생각했고 손가락을 다쳤다"고 말했다. 이어 "런던올림픽때보다 손가락 부상은 더 심한 상태지만 전체적인 몸상태는 괜찮다"며 오히려 웃음을 보였다. 동료 국가대표 선수들도 감동하게 만드는 투지다. 인천아시안게임 출전에 앞서 지난 13일 김재범과 함께 소속팀 한국 마사회에 인사를 하러 간 탁구 국가대표 박영숙은 자신의 SNS에 '대단하다. 더이상 무슨 말이 필요할까'라는 글과 함께 김재범의 손가락 사진을 게재했다. 목표를 위해 부상마저 넘어선 김재범의 투지는 같은 국가대표에게도 금메달감이었다.
김재범은 아픈 손으로 다시 상대의 도복을 잡는다. 김재범은 21일 인천 도원체육관에서 열리는 유도 남자 81㎏급에 출전해 아시안게임 2연패에 도전한다. 커리어 그랜드슬램을 달성하며 선수로 모든 것을 다 이뤄낸 김재범이 다시 뛰는 힘은 '도전 정신'에서 나온다. "다 이뤘기 때문에 이제부터가 도전이다. 보통 목표를 이뤄내면 쉽게 그만두거나 내려오게 된다. 그래서 지금부터가 도전이다. 남들이 하지 않는 1% 속에서 1%의 가치를 찾아내겠다. 내가 유도의 끝을 봤다 생각할 때까지 도복을 입을 것이다." 부상이 있기에, 김재범의 끝없는 도전이 더욱 빛이 나고 있다.
하성룡 기자 jackiecha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