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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부사 류중일, 2013년 WBC 악몽을 이제는 잊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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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중일 인천아시안게임 야구대표팀 감독(51)은 국민들에게 마음의 빚을 갖고 있다. 그는 지난 2013년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서 첫 대표팀 사령탑으로 출전했다가 예선 1라운드에서 조 3위로 탈락의 고배를 들었다. 이 가슴 아픈 얘기를 몇 차례 스스로 곱씹어 말했다. 그때 첫 상대 네덜란드에 0대5로 완패당한게 결국 류중일호의 발목을 잡고 말았다. 정신을 차리고 호주와 대만을 연파했다. 하지만 대만 네덜란드와 2승1패로 동률, 팀간 득점 합계에서 대만 네덜란드에 밀려 2라운드 진출에 실패했다. 그 실패가 류중일 감독에게 큰 충격이었다.

류중일 감독은 삼성 라이온즈의 사령탑으로서 2011시즌부터 지난해까지 3년 연속 국내 프로야구 통산 3연패라는 큰 업적을 세웠다. 그는 스스로 복이 많은 사람이라고 낮춰 말한다. 류중일 감독은 전문가들 사이에서 '관리 야구'의 달인으로 평가받는다. 수많은 스타 선수들과 유망주들을 적재적소에 배치하고 또 뛸 기회를 준다. 이번 시즌에도 삼성 라이온즈는 페넌트레이스 선두를 달리고 있다. 큰 이변이 없는 한 4년 연속 페넌트레이스 1위 가능성이 높다. 삼성은 올해 성적과 함께 박해민 이흥련 같은 유망주를 발굴해 두마리 토끼를 성공적으로 사냥했다.

현재 국내리그에선 류중일 감독의 강력한 대항마라고 꼽을 지도자가 없다. 그런 그에게 이번 인천아시안게임 우승은 또 하나의 시험 무대다.

그는 지휘봉을 잡은 첫 해, 한국 대표로 삼성을 이끌고 나간 2011년 아시아시리즈에서 일본 챔피언 소프트뱅크 호크스를 꺾고 우승 트로피를 안고 귀국했다.

하지만 2012년 부산에서 열린 아시아시리즈에선 대만의 라미고 몽키스에 0대3으로 완패, 결승 진출에 실패했다. 일본 최강 요미우리 자이언츠와의 결승전을 기대했지만 붙어보지도 못하고 말았다.

그리고 2013년 3월 대만에서 열린 WBC 1라운드에서 네덜란드와의 첫 경기에서 충격적인 완패를 당했다. 또 2013년 국내 리그 챔피언 자격으로 나간 아시아시리즈 준결승전에서 캡버라 카발리(호주 대표)에 5대9로 지면서 결승 진출이 좌절됐다. 일부 팬들은 이런 결과를 두고 류중일 감독을 '국내용'이라고 깎아내렸다. 아시아시리즈의 경우 외국인 선수 및 부상 선수 등의 결장으로 베스트 선수 기용을 하지 못했던 어려움을 감안해야 했다.

전문가들은 류중일 감독이 이런 과거 기록 때문에 이번 아시안게임에서 좋은 성적에 대한 부담을 갖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한다. 옛 쓰라린 경험은 류중일 감독에게 이미 돈주고도 사먹지 못할 약이 됐다. 그는 평소 선수들에게 한두 번의 실수를 너그럽게 용납을 해준다. 하지만 똑같은 실수를 계속 반복하는 걸 봐주진 않는다. 류 감독은 킬링타임용으로 하는 장기나 바둑 같은 승부에서도 지는 걸 못 견뎌한다. 되갚아주어야 직성이 풀린다.

전문가들은 이번 아시안게임이 류중일 감독에게 지도자로서 한 단계 성장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지난해 WBC와 이번 아시안게임은 상대팀의 수준과 장소, 긴장감 등에서 완전히 다른 대회다. 아시안게임에선 상대적으로 기본 전력이 떨어지는 팀들을 상대한다. 또 인천 문학구장과 목동구장에서 경기를 하기 때문에 홈의 이점도 갖고 싸운다. 반면 반드시 금메달을 따야 한다는 중압감은 더 크다. 류 감독도 스스로 명예회복을 해야 한다는 걸 염두에 두고 있다.

단기전은 의외의 변수가 경기 판도를 바꿀 수 있다. 따라서 선수단의 전부가 집중하고 항상 긴장감을 유지해야 한다. 조금만 흐트러져도 부상자가 나올 수 있고, 팀의 '케미스트리(융화)'도 깨진다. 사령탑의 용병술도 시험대에 오르게 된다. 우승을 위해선 5전 전승 시나리오가 가장 깔끔하다. 모든 경기를 다 이기면 그만이다. 한 경기라도 잡히면 태극전사들이 긴장해서 다음 경기를 망칠 수 있다. 따라서 매 경기 총력전이 필요하다. 단기전에선 다음 경기를 위해 힘을 비축했다가 낭패보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무조건 당일 상대를 제압하고 그 다음으로 넘어가야 한다. 선발 투수 선정와 마운드 운영 그리고 타순 라인업을 상대팀에 맞게 잘 짜내야 한다. 이게 류중일 감독이 코치들과 머리를 맞대고 해야 할 역할이다. 노주환 기자 nogoo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