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한 것만큼 잘하지 않았지만, 첫 단추를 잘 뀄다."
'고공 폭격기' 김신욱(26·울산)의 표정에는 기쁨과 아쉬움이 교차했다.
김신욱은 14일 인천문학경기장에서 벌어진 말레이시아와의 2014년 인천아시안게임 조별리그 1차전에 선발 출전, 1-0으로 앞선 후반 33분 추가골을 터뜨리며 팀의 3대0 쾌승을 이끌었다.
예상대로였다. 이날 김신욱은 말레이시아 수비수들의 집중견제를 받았다. 2~3명이 김신욱과 공중에서 경쟁했다. 승자는 김신욱이었다. 1m96인 큰 키는 상대 선수들이 극복할 수 없는 '마의 벽'이었다. 경기가 끝난 뒤 공동취재구역에서 만난 김신욱은 "2~3명이 나를 마크한다. 쉽지 않다"며 "1골만 넣고 희생적인 움직임을 생각했다"고 밝혔다. '김신욱 효과'는 대단했다. 다른 동료들이 반사이익을 누렸다. 전반 26분 임창우(대전)의 선제골도 김신욱에게 상대 수비수들의 시선이 쏠린 틈에서 나왔다.
이광종 인천아시안게임 감독이 바라던 그림이 그려졌다. 김신욱은 이광종호의 와일드카드(23세 초과 선수) 1순위로 꼽혔다. 기존 이용재(나가사키)와 이종호(전남) 등 스트라이커 자원이 있었다. 그러나 이광종 아시안게임대표팀 감독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은 김신욱이었다. 2013년 K-리그 최우수선수(MVP) 수상으로 이미 K-리그를 접수한 김신욱은 이 감독이 고민없이 선택한 와일드카드였다.
김신욱은 성실함으로 잔부상을 털어버렸다. 지난달 31일 포항과의 '동해안더비'를 마친 뒤 곧바로 이광종호에 소집됐다. 아버지 차를 타고 새벽에 서울로 올라와야 했다. 아시안게임 차출 직전 경기라 온 힘을 쏟아부었다. 그러자 오른쪽 허벅지에 고통을 느꼈다. 그렇다고 훈련을 게을리할 수 없었다. 코칭스태프의 배려가 있었지만, 자신이 먼저 솔선수범해야 후배들이 따라온다는 생각이 강했다. 팀 내 최고참으로서의 책임감이었다.
김신욱은 이광종호의 분위기 메이커였다. 훈련이나 생활 속에서 후배들과 재미있는 대화를 통해 팀 내 분위기를 화기애애하게 만들었다. 먼저 다가가기 힘든 후배들에게도 먼저 말을 걸어 긴장감을 완화했다. 김신욱의 수다는 이광종호의 에너지드링크다.
누구보다 열심히 뛸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그의 눈은 유럽을 향해 있다. 그러나 걸림돌이 있다. 바로 병역이다.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다보니 그동안 완적 이적보다 임대 제안이 오곤 한다. 김신욱은 임대로는 유럽으로 가고싶지 않았다. 둥지를 옮길 때 옮기더라도 자신의 가치를 제대로 인정받고 싶어했다. 또 유럽에서 임대신분의 아시아 선수의 미래는 불보듯 뻔하다. 빠른 시간 안에 인상적인 모습을 보이지 못할 경우 벤치신세가 길어질 수 있다.
병역면제 혜택을 받을 수 있는 길은 인천아시안게임 금메달이었다. 그러나 김신욱은 '병역'이란 단어를 마음 속에서 지웠다. 너무 병역에 집중하다보면 개인 플레이가 난무하고 조직력이 흐트러질 수 있기 때문이다. '병역'이란 단어를 이광종호에서 금기어로 만든 것이 김신욱이었다.
이제 한 고비를 넘었을 뿐이다. 김신욱은 들뜨지 않는 법을 알고 있다. 마인드컨트롤의 일인자다. 그의 눈은 16강 진출의 분수령이 될 사우디아라비아와의 2차전을 바라보고 있다. 그는 "초반에 고전한 것은 상대 밀집수비에 대한 대비를 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위협적인 크로스가 필요하다. 손발을 맞춘지 얼마되지 않은 것이 문제"라고 꼬집었다. 또 "한국에서 열리는 만큼 사우디아라비아는 이길 수 있다"며 자신감을 드러냈다.
인천=김진회기자 manu35@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