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뿐만 아니라 글로벌 가전 양대 산맥인 삼성전자와 LG전자가 법정싸움을 벌일 위기다. 삼성전자는 이달초 독일 베를린에서 열린 유럽 최대 가전전시회 'IFA 2014' 기간 중 자사 세탁기 고의 파손 혐의로 조성진 LG전자 사장(58) 등 임직원을 검찰에 수사의뢰했다.
삼성전자는 LG전자 HA사업본부(Home Appliance, 생활가전)의 조 사장과 세탁기 담당 조 모 임원 등을 업무방해, 재물손괴, 명예훼손 등으로 서울중앙지검에 수사의뢰했다고 14일 밝혔다.
LG전자 임직원이 전시돼 있던 삼성전자 크리스털블루 세탁기 도어 연결부(힌지)를 고의로 파손하는 장면을 CCTV로 확인했다는 것이 삼성전자의 주장이다. 삼성전자는 경쟁기업 제품을 고의로 흠집 낼 의도였다며 발끈하고 있다. 이에 대해 LG전자는 고의는 없었고, 제품 시연 중에 일어난 단순 사고였다며 반박하고 있다.
▶삼성-LG 가전제품 법정공방 2년 만에 재연
삼성전자와 LG전자가 법정공방을 벌이는 것은 2년만이다. 2012년 세탁기 용량 문제로 양 사는 첨예하게 대립했다. 삼성전자는 자사의 900ℓ 지펠 냉장고가 LG전자의 910ℓ 디오스 냉장고보다 실제 용량이 크다는 내용으로 유튜브에 실험 동영상을 올렸다. 냉장고를 눕혀 물을 채워보면 디오스 냉장고 용량보다 더 크다는 내용이었다. 삼성전자는 당시 LG전자가 낸 가처분 소송에서 패했고, 양측은 손해배상 소송까지 갔다가 지난해 8월 취하했다.
올해 양사의 가전 신경전이 극에 달할 것이라는 분석은 어느 정도 예상됐다. 스마트폰과 TV 글로벌 1위인 삼성전자는 내친김에 2015년 글로벌 가전 1위를 달성하겠다며 LG전자를 압박했다. 이에 자극받은 LG전자도 사활을 걸고 백색 가전시장 수성 포부를 밝힌 바 있다.
▶삼성전자, "진실 규명할 터"
작은 사건 뒤 CCTV 확인 과정에서 일이 확대됐다.
지난 3일(현지시간) IFA 개막을 이틀 앞두고 베를린 시내 대형마트인 자툰사의 유로파센터 매장에서 IFA에도 전시된 삼성전자의 최신모델 크리스털 블루 세탁기의 도어 연결부가 파손됐다. LG전자 세탁기 개발담당 임원과 직원 1명이 세탁기를 만지다 고장을 내자 매장 직원의 신고로 경찰이 출동했다. 현지 경찰의 조사가 벌어졌고, 해당 LG전자 임직원은 현장에서 세탁기 4대를 변상키로 하고 숙소로 돌아갔다. 이와 별도로 사건 몇 시간전 슈티글리츠 매장에도 세탁기 3대가 동일한 형태로 망가졌다는 신고가 들어와 삼성전자는 현장조사를 했다. 이 과정에서 LG전자 조성진 사장 등 7~8명이 삼성 세탁기를 만졌고 조 사장이 직접 세탁기를 파손한 뒤 자리를 뜨는 장면이 CCTV에 찍혔다는 것이 삼성전자의 설명이다.
삼성전자는 국가적 위신과 사회적 파장을 고려, 독일 현지에서 사건을 확대하지 않고 대신 귀국 후 진실규명을 위해 검찰조사를 의뢰했다고 덧붙였다. 삼성전자는 "우리는 명백한 피해자"라며 "경쟁 국내업체 최고위 임원을 수사의뢰한 것은 유감스럽지만 제품 파손을 통해 소비자들에게 원래 하자가 있는 것처럼 착각하게 해 제품 이미지를 실추했다"고 강조했다.
▶LG전자 "상도의 아니다"
삼성전자가 수사의뢰한 조 사장은 세탁기 분야에선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2013년 LG전자 사장으로 부임한 그는 LG전자 입사 후 30년 넘게 세탁기 연구개발을 통해 글로벌 시장점유율 1위를 만들어낸 주인공이다. 공고출신으로 사장 자리까지 올랐다. 용산공고 재학 시절 산학우수 장학생으로 금성사 세탁기 설계 기술자로 직장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1980년대 일본 기술로 제작하던 전자동 세탁기를 100% 국산화했고, 이후 새로운 세탁기의 핵심 모터 개발을 주도해 세계를 놀라게 했다.
삼성전자가 조 사장을 직접 겨냥한 터라 LG전자의 반응도 격하다. LG전자는 다소 황당하다는 입장이다. LG측은 현지에서 임직원이 경쟁사 제품의 사용 환경을 단순 테스트하는 것은 흔히 있는 일이고 조 사장이 해당 매장을 둘러본 것과 이번 사건은 무관하다고 설명했다.
LG전자 관계자는 "드럼세탁기는 다소 낮게 설계돼 허리를 숙여 문을 열다보면 위로 힘이 일정부분 가해질 수 있다. 몇몇 외국 제품은 문제가 없었지만 삼성제품은 힌지가 손상됐다. 경쟁사 제품을 살펴보는 과정에서 우연하게 일어난 일이지 망가뜨릴 의도는 전혀 없었다. 사장이 직접 나서 경쟁사 제품을 고장 낸다는 것이 상식적으로 말이 되느냐. 아무리 경쟁업체지만 이는 '상도의'가 아니다. 어차피 CCTV에 해당 장면이 명확하게 잡혔다면 시시비비는 가려질 것"이라고 말했다. 박재호 기자 jhpark@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