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참은 경기력이 안되면 결국 팀에는 짐이다."
'차미네이터' 차두리(34·서울)는 5일 베네수엘라와의 평가전을 앞두고 이렇게 말했었다. 2001년 11월 8일 세네갈과의 친선경기에서 A매치 데뷔전을 치렀다. 2002년 한-일월드컵과 2010년 남아공월드컵 등 두 차례 월드컵 무대를 누볐다. 마지막 A매치는 2011년 11월 15일 레바논과의 브라질월드컵 3차예선이었다. 올해 3월 그리스 원정 평가전 엔트리에 포함됐지만, 햄스트링 부상으로 대표팀 합류가 불발됐다. 베네수엘라전은 2년 9개월만의 A매치였다. 고참의 경험, 멘토 역할도 중요하지만 결국은 "100% 경기력을 발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차두리는 베네수엘라전(3대1 승)에서 스스로의 말을 몸으로 증명해 보였다. 10살 이상 어린 후배들에게 체력적, 기술적, 정신적으로 조금도 밀리지 않았다. 90분 내내 맹렬히 달렸다. 오른쪽 측면에서 거침없는 오버래핑을 선보였고, 손흥민, 이동국에게 날선 크로스를 잇달아 올리며 찬스를 만들었다. 차두리의 나이를 잊은 폭풍 드리블과 질풍 스피드에 관중석의 차범근 전SBS 해설위원이 웃음을 터뜨리는 장면이 중계화면에 클로즈업 됐다. 유쾌했다. 후반 이청용의 교체 직후, 주장 완장을 이어받았다. 인저리타임 마음이 급해진 베네수엘라 공격수 페도르가 문전 헤딩 상황에서 골키퍼 김진현을 향해 고의적으로 거칠게 몸을 던지자, 차두리가 전면에 나섰다. 영어로 격렬하게 항의했다. '페어플레이' 하지 않는 상대를 향해 격한 분노를 표했다. 옐로카드를 받아들었지만, 후배들을 지키고자 하는 마음, 팀을 지키고자 하는 진심이 전해진 장면이었다.
차두리는 브라질월드컵을 그라운드 밖에서 지켜봤다. 후배들을 파이팅을 응원하며, 애정 넘치는 글과 선수만이 할 수 있는 냉철한 조언을 쏟아냈다. 그라운드 밖에서 후배들을 '가장 가까운 관찰자'로 지켜보며 배운 점도, 느낀 점도 많다. 브라질월드컵 시련 후 상처받은 후배들과 함께 울었다. "후배들과 함께 뛰어주지 못해 그저 미안"했던 차두리는 이날 그 아쉬움을 훌훌 털어냈다. 브라질월드컵 직후 바닥으로 가라앉은 한국축구, 비난과 논쟁이 들끓는 한국축구에 '최고참' 이동국과 함께 '특급 소방수' 역할을 자청했다. 좋은 선배이자, 강한 선배였다. '로봇두리' '차미네이터'는 멈춰서지 않았다. 거침없는 오버래핑, 물샐틈 없는 수비력, 날카로운 크로스, 90분 내내 지치지 않는 강철체력… '명품 풀백'의 모든 것을 보여줬다. "고참은 경기력이 안되면 짐"이라며 스스로를 다그쳤던 차두리는 200%, 그 이상의 경기력으로 '고참의 힘'을 입증했다. 전영지 기자 sky4us@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