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포항의 몰락을 예상했다.
이명주(24·알아인)의 공백 때문이었다. 이명주는 2014년 K-리그 클래식 전반기를 마치고 팀을 떠났다. 전반기 11경기서 14개의 공격포인트(5골-9도움)를 쓸어담은 이명주의 존재감은 상상을 초월했다. 황선홍 포항 감독조차 "후반기 어려움을 감수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할 정도였다. 후반기 첫 경기부터 공백의 여파가 여실히 드러났다. 이명주와의 찰떡궁합 속에 전반기 11경기서 7골을 몰아쳤던 김승대(23)는 침묵했고, 중원의 무게감도 떨어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포항은 곧 중심을 잡았다. 2일 현재 전북과 승점차 없는 2위로 선두권을 굳건히 지키고 있다. '리틀 이명주' 손준호(22)의 발견이 포항을 일으켜세웠다.
▶내 운명 포항, 그리고 태하 아저씨
손준호는 경북 영덕군 강구면 출신이다. 포항과 지척인 곳이다. 어린 시절부터 축구공을 끼고 살았다. 대구공고에서 선수 생활을 한 뒤 지도자로 전향한 아버지 손상태씨의 영향을 받았다. 동네 축구에서는 적수가 없었다.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일찌감치 선수로 입문했다. 아버지 손씨의 축구DNA를 그대로 물려 받았다.
꼬마 손준호는 주말마다 아버지 손을 잡고 강구에서 1시간 거리인 포항 스틸야드를 찾았다. 항상 '키다리 아저씨'가 손준호를 반갑게 맞았다. 대구공고에서 손씨와 호흡을 맞췄던 동기생이자 포항의 레전드인 박태하 전 A대표팀 코치였다. 아버지와 '태하 아저씨' 덕에 선수들을 만나고 라커룸 구경 등 남들은 못하는 진귀한 경험을 했다. 손준호는 "'태하 아저씨'가 많은 관중 속에 그라운드를 뛰는 모습이 정말 멋졌다. 그 때부터 '포항에서 뛰고 싶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고 회상했다.
손준호는 초등학교 4학년 때 인천 남동초로 전학한 뒤 제물포중에 진학했다. 그런데 중 2때 첫 시련이 찾아왔다. 축구부가 분란으로 시끄럽자 학교가 선수, 지도자를 모두 내보내기로 한 것이다. 망연자실한 손준호에게 '태하 아저씨'가 다가왔다. 손준호는 박 코치의 주선으로 포항 유스팀인 포철중에서 K-리거의 꿈을 이어갔다. 손준호는 "축구를 더 할 수 있다는 기쁨보다 '열심히 운동해서 꼭 보답하자'는 마음이 컸다"고 미소를 지었다.
▶고진감래, 아시아 정벌의 꿈
포철중은 전쟁터였다. 국내 최강 유스팀은 신세계였다. 전국의 내로라 하는 인재들이 무한경쟁을 펼치고 있었다. 중2 손준호는 지금(수비형 미드필더)과 달리 공격형 미드필더였다. 현재 포항에서 발을 맞추고 있는 김승대(23)가 포철중 1년 선배였다. 고무열(24) 이명주(24)가 당시 포항 18세 이하 유스팀(현 포철고)이었던 포철공고에서 날리던 2년 선배였다. 손준호는 그저 '볼 좀 찰 줄 아는 전학생' 정도였다.
부상도 손준호의 발목을 잡았다. 손준호는 제물포중을 나와 포철중으로 옮기기 전 발가락뼈를 다쳤다. 좀처럼 낫질 않았다. 이듬해 팀 최고참인 3학년이 됐지만, 벤치신세였다. 당시 포철중 사령탑이었던 최문식 감독(현 아시안게임대표팀 코치)은 손준호를 바라보기만 할 뿐이었다. 손준호는 "최고참인 3학년인데 벤치에 앉아있기가 솔직히 창피했다. 그때는 '반드시 뛰겠다'는 오기로 운동을 했다. 근데 지금 생각해보니 선생님이 완벽한 몸이 될 때까지 기다린 게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컨디션이 정상궤도에 오르자 최 감독은 손준호를 내보내기 시작했다. 이후 탄탄대로였다. 손준호는 추계대회에서 팀을 우승으로 이끌며 최우수선수(MVP)로 선정됐다. 추계대회 활약을 바탕으로 중학선발팀에 뽑혀 국제대회에서 6골로 득점왕에 올랐다. 이 대회 활약으로 2008년 대한축구협회가 주최한 '축구인의 날' 행사에서 최우수 중학 선수로 선정되는 영예도 안았다. 포철공고 진학 뒤에도 백록기에 나서 6골을 쓸어담는 등 적수가 없었다. 포철공고 졸업 뒤엔 영남대에 진학해 황금기를 이끌었다. 이 시절 이명주-고무열-김승대-손준호로 이어지는 포항의 황금세대가 완성됐다.
손준호는 영남대 3학년이던 지난해 U-리그 우승을 끝으로 포항의 호출을 받았다. 가장 재미있게 축구를 했던 영남대를 떠나기가 쉽지 않았다. 아시아챔피언스리그(ACL)의 꿈이 손준호를 포항으로 잡아당겼다. 손준호는 "어릴 때부터 ACL에 나서고 싶었다. '포항이 ACL 본선에 가면 뛰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내심 했는데, 지난해 클래식 우승으로 이뤄졌다. 고민이 사라졌다"고 말했다.
▶이명주를 뛰어넘고 싶다.
포항 관계자들은 "손준호를 보면 이명주의 데뷔 시절을 보는 것 같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한다. 그럴 만하다. 짧게 자른 각진 머리와 검게 그을린 무표정 얼굴은 잘 아는 이가 아니라면 '이명주'라고 불러도 속을 만큼 닮았다. 데뷔 첫해 주전 도약 뿐만 아니라 폭넓은 활동량, 패스까지 판박이다. 황 감독은 "정말 좋은 재능을 갖고 있는 선수다. 특히 축구를 대하는 진지한 자세가 일품"이라고 엄지를 세웠다. 그러면서도 "이명주가 경기를 아우르는 힘이 있다면, 손준호는 아직 둔탁한 편이다. 좀 더 자신을 갈고 닦아 한 단계 더 성장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손준호-이명주는 정말 친한 선후배다. 이명주가 알아인으로 이적한 뒤에도 수시로 연락을 주고 받고 있다. 손준호는 2014년 인천아시안게임, 이명주는 베네수엘라, 우루과이와 맞대결 하는 A대표팀에 합류하면서 태극마크의 꿈을 이뤘다. 비록 팀은 다르지만 파주NFC(국가대표트레이닝센터)를 같이 누비게 됐다. 손준호는 "(이)명주형이 인천아시안게임 대표로 거론될 때 내심 함께 선발되길 바랐다"며 "혼자 아시안게임에 나가게 되어 아쉬웠는데, 명주형이 A대표팀에 합류해서 기쁘다"고 웃었다. 하지만 '이명주바라기'를 할 생각은 없어 보였다. 손준호는 "주변에서 명주형과 비슷하다는 말을 많이 듣는다. 감사할 따름"이라면서도 "명주형처럼 팀의 중심이 되고 싶다. '리틀 이명주'가 아닌 손준호로 기억될 것"이라는 각오를 드러냈다.
손준호의 꿈은 모든 포항 출신이 꿈꾸는 레전드가 되는 것이다. "스틸야드에서 팬들이 내 이름을 불러줄 때마다 '찌릿찌릿'하다. 나도 '태하 아저씨'나 황 감독님, 다른 선배들처럼 포항의 레전드가 되고 싶다." 박상경 기자 ppark@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