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단하다'는 말 말고는 딱히 떠오르는 말이 없었다.
포항이 '동해안 더비'를 승리로 장식했다. 포항은 31일 울산 원정에서 짜릿한 2대1 역전승을 거뒀다. 전반 26분 김신욱에게 선제골을 얻어맞았지만, 전반 29분 강수일의 동점골과 후반 3분 김재성의 결승골로 귀중한 승점 3점을 챙겼다. 선두 전북과 나란히 승점 44를 기록, 선두싸움을 뿌엿 안갯속으로 빠뜨렸다.
'승리'만이 보약이었다. 포항은 지칠대로 지쳐있었다. 특히 심리적으로 힘들었다. 사력을 다한 아시아챔피언스리그(ACL)에서 4강 진출 좌절의 아픔을 겪었다. 이젠 K-리그 클래식 우승에만 집중할 수 있다고 위안거리를 찾을수는 있지만, 정신적 회복이 쉽지 않아 보였다. 울산과의 라이벌전을 앞두고 황선홍 포항 감독도 어려움을 토로했다. "ACL 8강 2차전 패배 이후 이틀간 고민했다. 마땅한 대안이 생각나지 않더라." 여러가지 주문보다 편안함이 우선이었다. 황 감독은 "'빨리 잊자'고 했다. 부담감을 떨쳐버리고 우리만의 창의적인 플레이로 극복하자고 주문했다"고 밝혔다. 이어 "서울전이 끝나고 쉬었다. 훈련량도 늘리지 않았다. 심적으로 여유를 가져야 한다고 판단했다. 사실 체력적으로 힘들 선수들에게는 휴식을 부여하려고 했다. 그러나 선수들이 괜찮다고 하더라. 그저 고마웠다"고 했다.
라이벌전 승리의 중요성은 더 이상 설명이 필요없었다. 황 감독은 "라이벌전은 이겨야 한다. 롱볼 빈도수가 줄어든 울산의 측면 크로스에 대비해야 한다. 김형일의 공백을 메울 배슬기가 초반에 흔들리지 않으면 승산이 있다"고 예상했다.
이날 포항 선수들은 '하나'였다. ACL 8강 탈락과 라이벌전에 대한 필승 의지가 오히려 선수들의 정신력을 강하게 만든 모습이었다. 황 감독이 정착시킨 '스틸타카(스틸러스+티키타카)'는 라이벌전을 벼르던 울산을 넘는 열쇠가 됐다. 황 감독의 전략도 제대로 먹혀들었다. 울산의 흔들리던 수비 조직력을 빠른 역습으로 뚫었다. 경기가 끝난 뒤 황 감독은 "우리는 서로에 대한 믿음이 있다. 어려울수록 힘을 합쳐 극복해 나아가자고 선수들에게 주문했다. 잘해줬다. 최선을 다한 선수들이 대견하다"며 고마움을 전했다.
이날 승리는 전북의 시즌 첫 연패와 맞물려 더 큰 의미를 가졌다. 전북은 1.5군의 서울에 패한 뒤 전남과의 '철강 더비'에서도 쓰라린 패배를 맛봤다. 그러면서 선두권 경쟁이 안갯속으로 빠졌다. 포항은 전북과 승점(44점)에서 어깨를 맞췄다. 골득실(전북 +23, 포항 +15)에서 뒤진 2위다. 포항이 지난시즌 후반처럼 폭풍 상승세를 이어갈 경우 우승 경쟁은 더 치열해질 전망이다.
울산=김진회기자 manu35@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