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신 장군이 등장, 검을 휘둘렀다.
수군들은 '성효 부적'기를 흔들었다. 콘셉트는 최단 기간 1000만 관객을 돌파한 영화 '명량'이었다. 장내 아나운서는 비장한 목소리로 "필사즉생, 필생즉사"를 외쳤다. '살고자 하면 필히 죽을 것이요, 죽고자 하면 살 것이다', 이순신 장군의 혼을 담았다.
10일 부산아이파크는 '명량'으로 춤을 췄다. "신에게는 아직 12척의 배가 남아있습니다"라는 명언을 패러디한 '신에게는 아직 서울전이 남아 있습니다'라는 카피가 등장했다. 부산의 이순신 장군은 윤성효 감독(52)이었다. 그럴만했다. 부산은 올시즌 최악의 부진에 빠져있다. 클래식에서 10경기 연속 무승(4무6패)이다. 12개팀 가운데 11위(승점 16)로 추락했다. 최하위 경남(승점 15)과의 승점 차는 단 1점에 불과했다.
눈을 돌릴 곳은 없었다. '명량'의 투혼으로 서울전에서 배수진을 쳤다. 스토리도 넘쳤다. 윤 감독과 최용수 서울 감독(43)은 특별한 관계다. 둘은 중·고·대학(동래중→동래고→연세대)의 선후배 사이다. 천적이란 다리도 놓여있다. 수원에 이어 지난해 부산의 지휘봉을 잡은 윤 감독은 최 감독과의 대결에선 8승2무2패로 절대 우세다. 그래서 부산이 또 하나 등장시킨 카피는 '용수야, 니는 내한테 아직 아이다'이다. '아직 안된다'를 부산 사투리로 풀이했다.
'성효 부적'은 또 다른 화제였다. 지난해 부산 팬들이 만든 작품이다. 지난해까지 '입증'된 것은 강팀을 잡는데 '효험'이 있다는 것이었다. 부산은 이날 대형 '성효 부적'을 제작, 관중석에 내걸었다. 깃발 4개도 별도로 등장시켰다.
그러나 최 감독이 딴죽을 걸었다. 그는 "4월 윤성효 감독님에게 부적을 빌려달라고 했더니 윤 감독님이 '그래 가져가라'고 하셨다. 지금 '윤성효 부적'은 나에게 있다. 진짜 맞는 말이다"라고 했다. 반면 윤 감독은 "주고 뺏는 것이 아니다. 나도 갖고 있지 않은데 어떻게 주겠느냐"며 웃었다.
최 감독도 반전이 절실했다. 서울은 6일 안방에서 울산에 0대1로 패하며 홈 3연승, 7경기 연속 무패행진(3승4무)에 제동이 걸렸다. 그룹A의 마지노선인 6위 도약을 꿈꿨지만 7위(승점 22)에 머물렀다. 6위 울산(승점 27)과의 승점 차는 5점으로 벌어졌다. 물러설 곳이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이야기는 또 있다. 부산과 서울은 '신의 장난'이 야속했다. 10일 정규리그에 이어 13일 FA컵 8강전에서 재격돌한다. 두 감독 모두 "기선제압이 중요하다"고 했다.
빗속에서 충돌했다. 부산이 유지노, 파그너, 한지호를 앞세워 세차게 몰아쳤다. '명량'이 힘을 발휘하는 듯 했다. 그러나 서울의 수문장 유상훈의 선방에 막혀 골과는 인연이 없었다. 후반 33분 마침내 대세가 갈렸다. 최 감독의 서울이었다. 차두리가 얻은 페널티킥을 몰리나가 침착하게 골로 연결했다. 서울은 후반 44분 에스쿠데로가 한 골을 더 보탰다.
최 감독이 미소를 지었다. 서울은 이날 부산을 2대0으로 꺾고 6위 진입을 위해 재시동을 걸었다. 승점 25점을 기록하며 5위 울산, 6위 전남(이상 승점 30)과의 승점 차를 5점으로 줄였다.
최 감독은 '명량'의 배수진을 뚫었다. 부산에 올시즌 첫 승을 거둔 데 이어 윤 감독과의 대결에서도 1승을 추가했다. 부산은 승점 16점에 머물렀다.
그러나 끝이 아니다. 13일에는 FA컵 4강 티켓이 걸렸다. 윤성효와 최용수, 최용수 윤성효의 '명량'은 계속된다. 부산=김성원 기자 newsme@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