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브라질월드컵은 악몽이었다.
브라질의 그라운드는 태극전사들의 눈물로 채워졌다. 1무2패에 비난의 화살이 쏟아졌다. 2년 전 런던올림픽에서 동메달 신화를 일군 홍명보 감독은 자진사퇴했다. 한국 축구의 민낯이었다. 탈출구를 찾아야 한다고 했다. 결국 해법은 하나였다. 이구동성, 한국 축구의 젖줄인 K-리그에서 길을 찾아야 한다고 했다.
한국 축구의 재건을 바라는 목소리가 가득했다. 브라질월드컵, 아픈 역사는 잉크도 마르지 않았다. 그러나 또 역행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논바닥 잔디'로 국제 망신을 당했다. 올해에는 '반쪽 무관중'으로 또 다시 세상을 놀라게 하고 있다. 서울월드컵경기장의 어제와 오늘이다.
FC서울이 6일 오후 7시 30분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울산 현대와 2014년 현대오일뱅크 K-리그 클래식 19라운드를 치른다. 그러나 '황금 관중석'인 본부석 맞은 편의 E석이 폐쇄된다. 팬을 받지 않는다. 9일과 10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리는 '현대카드 시티브레이크 2014' 콘서트의 무대와 대형 스크린 설치로 K-리그는 뒷전이 됐다. 가수 싸이와 미국 팝 밴드 마룬파이브 등이 출연하는 대형 문화행사에 올초 계획된 K-리그가 일부 무대를 내줬다.
서울월드컵경기장은 공기업인 서울시설관리공단이 운영한다. 시설공단의 한 관계자는 "문화행사를 신청하면 이틀 만에 다 짓는다고 한다. 하지만 이번의 경우 무대가 엄청 크더라. 세월호 사고 이후로 첫째도 안전, 둘째도 안전이다. 심사숙고해서 결정했다"며 "FC서울과 협의가 끝난 문제다. 올시즌 주중 수요일 경기에서 단 한번도 1만명이 넘지 않았다. 자료를 분석한 결과 7000명선이더라. 휴가철이라 1만명을 넘기 힘들다. (이 정도면)더 좋은 자리에서 수용이 다 된다"고 했다.
그들의 논리다. 하지만 서울월드컵경기장이 세상에 나온 후 '반쪽 무관중 경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특히 월드컵 후 K-리그가 희망의 불씨로 자리잡고 있다. 중심이 상암벌이다. 브라질월드컵 '참사' 뒤 펼쳐진 서울과 수원의 슈퍼매치에 4만6549명(7월 12일), 비가 쏟아진 K-리그 올스타전에 5만113명(7월 25일)이 들어선데 이어 레버쿠젠과 서울의 친선경기에선 4만6549명(7월 30일)이 입장했다. 공교롭게 25일과 30일은 주중이었다.
하필 이때 K-리그 오욕의 얼굴이 드러났다. 시설공단은 콘서트 대관료로 약 4억원을 챙길 것으로 예상된다. 사실 그들에게 특별하게 기대할 건 없다.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서울특별시의 산하단체지만 서울월드컵경기장의 운영에선 '갑'이다.
더 큰 문제는 FC서울이다. K-리그의 주권을 내줬다. 이미 선계약한 FC서울이 합의를 안했다면 '반쪽 무관중 사태'는 일어나지 않았다. 프로는 단 1명의 팬이 입장해도 최선을 다해야 한다. 주중 관중이 1만명이 넘지 못한다면 2만, 3만, 4만명이 될 수 있도록 뛰고, 또 뛰어야 한다. 그러나 현실과의 적당한 타협으로 팬들의 주권을 묵살해 버렸다.
시설공단과 FC서울은 콘서트로 마련된 대형 스크린을 울산전에서 활용한다고 한다. 하지만 한 번 잃은 팬심은 어떻게 되돌릴 수 있을지 궁금하다.
"나도 사실 최근에 알았다. 스포츠 관람 문화는 이제 레저 생활의 일부가 됐다. 팬들은 원하는 자리를 선택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 물론 콘서트도 중요하다. 존중하지만 FC서울 팬들의 권리를 빼앗아 갈 순 없다. 한국 축구의 슬픈 현실이다. 팬들에게 죄송하다는 말 밖에 드릴 말씀이 없다." 최용수 서울 감독의 한탄이었다.
브라질월드컵 후 맹목적인 팬들의 K-리그 응원을 바란다는 읍소는 결국 스스로의 덫에 걸려버렸다. 김성원 기자 newsme@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