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수 만명의 꿈나무가 태극전사를 목표로 축구를 시작한다. 0.1%의 바늘구멍이다. 하지만 선수들의 꿈, 이를 바라보는 부모의 마음은 간절하기만 하다. 한국축구의 아이콘인 박지성과 그를 길러낸 아버지 박성종씨는 17일 경희대 국제캠퍼스에서 열린 대한축구협회 강연에서 태극전사가 되기 위한 10계명을 공개했다.
▶우리 아이, 냉정하게 판단하라
모두가 박지성이 될 수는 없다. 재능과 노력 모두 천차만별이기 때문이다. 박 씨는 "12세까지 자녀에게 축구를 시킨 뒤 부모와 지도자가 머리를 맞대고 판단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 아이는 특별하다는 생각은 버려야 한다. 냉정하게 바라보고 평가 받아야 한다"며 "축구 선수가 아니더라도 관련 직업을 택하면 된다"고 덧붙였다.
▶선생님, 선택한 뒤엔 믿어라
박 씨는 한 가지 일화를 털어놓았다. "(박)지성이가 수원공고 2학년 때 춘계대회 8강전에서 수비수 4명을 제치고 골을 넣었다. 당연히 4강에 나설 줄 알았는데 빠졌다. 서운한 마음이 들었다. 나중에 감독이 '지성이 체력은 거기까지가 한계였다'고 하더라." 박 씨는 "좋은 지도자를 만나는 게 우선이다. 아이를 맡긴 뒤엔 믿어야 한다. 선수 기용이나 훈련 모두 이유가 있다. 부모가 이해하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축구만 바라보라
박지성은 오로지 축구만 보고 달렸다고 자신있게 말했다. 그는 "처음 축구를 하고 싶다고 했을 때 아버지가 반대했다. 때문에 더 노력했다. 내가 좋아해서 시작한 축구였다. 지도자, 형들에게 맞을 때도 관두고 싶다는 생각은 한번도 하지 않았다. 정신력이라는 것은 결국 축구를 좋아하는 마음"이라고 말했다.
▶기본기에 올인하라
기본기가 없다면 응용도 없다. 공부와 축구 모두 마찬가지다. 박지성은 "기본기가 없으면 패스도 안된다. 기본기만 되도 할 수 있는 게 많다"고 말했다. 그는 "체격이나 킥력은 성장하면서 점차 늘어난다"고 설명했다. 또 "작은 선수라고 해도 순발력, 움직임 등 스스로 노력으로 얻을 수 있는 장점이 많다. 신체의 차이보다 자신의 능력을 발전시키는 게 우선"이라고 강조했다.
▶유학은 정답이 아니다
유럽-남미 축구유학은 양날의 검이다. 박 씨는 "부모가 아이와 함께 현지에서 직접 뒷바라지를 할 생각이라면 유학도 좋은 방법"이라면서도 "유럽 무대는 냉정하다. 한국 선수는 가장 밑바닥 취급을 받는다. 어린 선수들이 홀로 유럽에 와서 실패하는 게 부지기수"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박지성과 이영표도 한국에서 큰 선수들이다. 한국 축구 저변은 떨어지지만, 노력하면 누구든 좋은 선수가 될 환경이 된다"고 했다.
▶잔소리가 보약이다.
소통과 잔소리의 경계는 애매하다. 박지성 부자는 잔소리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박 씨는 "부모 자식의 소통은 당연한 것"이라며 "기술적인 부분은 지도자에게 맡겨도 사생활 등 외적인 부분은 관리를 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박지성은 "아버지는 잔소리 보다 명령에 가까웠다"고 웃으면서도 "어린 시절엔 사생활을 절제할 능력이 없다보니 어떻게 해야 할 지 모른다. 때문에 아버지 말씀을 듣고 축구에 집중하기 위해 노력했다"고 밝혔다.
▶놀땐 놀아라
잘 노는 것도 축구 잘하는 비법이다. 박지성은 "어릴 때 합숙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만화책만 보고 집 밖에 나가지 않았다. 축구를 잊어야 새로운 한 주에 집중할 수가 있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1주일 동안 본인이 얼마나 노력하느냐가 문제다. 만약 학교에서 훈련이 부족했다면 집에선 놀면 안된다"고 웃었다. 박 씨도 "나도 집에서 축구하라는 이야기는 잘 안했다"고 회상했다.
▶'산소탱크' 비결, 보양식 아닌 노력
박 씨가 왜소한 박지성의 체력을 키우기 위해 개구리즙을 먹인 사실은 해외에도 알려질 정도로 유명한 이야기다. 박 씨가 밝힌 산소탱크의 비결은 노력이었다. 그는 "개구리즙이 체력에 도움이 되기는 했지만, 비율은 10%도 안된다. 스스로 노력해야 체력도 만들어진다. 선수들의 체력을 보고 키울 줄 아는 지도자의 안목도 중요하다"고 말했다.
▶힘들 때는 꿈을 생각하라
박지성은 수원공고 졸업 뒤 프로 지명에 실패해 명지대에 간신히 진학했다. 맨유 시절이던 2007년엔 무릎수술로 선수생명의 기로에 섰다. 꿈이 박지성을 일으켰다. 박지성은 "내가 축구를 좋아했기 때문에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고 밝혔다. 박 씨는 "부상 재활 뒤 맨유 의무진이 '기적이 일어났다'고 말했지만, 노력했기 때문에 얻을 수 있었던 성과"라고 강조했다.
▶영어, 선택이 아닌 필수
해외 진출 시 선수들이 가장 애를 먹는 부분은 언어다. 박지성은 "다시 유소년 시절로 돌아간다면 어떻게 해서든 영어를 배워놓을 것"이라고 주저없이 말했다. 그는 "해외진출 꿈이 있다면 영어는 당연히 필요하다"며 "어릴 땐 모를 수도 있다. 나도 왜 필요한지 몰랐다. 유럽에 나가보니 축구에 집중하려면 생활이 편해야 한다. 언어를 못하면 적응이 안되고 한눈을 팔 수밖에 없다. 외국어를 배워두면 은퇴 뒤에도 더 많은 길을 갈 수 있는 선택의 여지가 넓어진다"고 강조했다.
수원=박상경 기자 ppark@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