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그저 그런 선수였다.
하위권팀과 2부리그를 전전했다. 프라이부르크에서 그나마 인상적인 활약을 펼쳤다. 독일 대표팀에 한번도 선발되지 못했다. 1979년 21세 이하 대표팀에 선발된 것이 전부였다.
감독이 된 이후 조금씩 빛을 보기 시작했다. 슈투트가르트 감독이 된 그는 발라코프, 에우베르, 보비치의 '매직 트라이앵글'을 앞세워 1996~1997시즌 DFP 포칼 우승, 1997~1998시즌 컵위너스컵 준우승이라는 성과를 거뒀다.
독일 대표팀에 온 후 그의 위상은 달라지기 시작했다. 2006년 독일월드컵을 앞두고 수석코치로 임명됐다. 위르겐 클린스만 감독과 코칭스쿨에서 맺은 인연이 이어졌다. 경험부족이라는 비난이 있었지만 탁월한 지략으로 독일을 월드컵 3위로 이끌었다. 클린스만 감독이 떠난 후 대표팀 감독이 됐다. 독일은 세대교체에 성공하며 유로2008 준우승, 2010년 남아공월드컵 3위, 유로2012 4강이라는 성과를 거뒀다. 그에게 남은 것은 우승컵을 들어올리는 일 뿐이었다. 쉽지 않은 여정이 될 것이라던 브라질월드컵, 그는 마침내 월드컵을 품에 안았다.
요아킴 뢰브 독일 감독(54)이 진정한 명장반열에 올랐다. 뢰브 감독은 젊은 선수들을 중용하며 '녹슨 전차군단'을 '신형 전차군단'으로 탈바꿈시켰다. 4-2-3-1을 바탕으로 독일 분데스리가의 양대산맥 바이에른 뮌헨과 도르트문트의 전술을 적절히 혼용하며 팀을 안정감있게 이끌어갔다. 특히 뢰브 감독은 선수들의 소속팀 포지션을 존중해주는 것으로 유명하다. 이번 대회에서도 람을 바이에른 뮌헨에서와 마찬가지로 중앙 미드필더로 활용했다.
용병술도 한단계 업그레이드 됐다. 뢰브 감독은 대회 전 준비한 플랜A를 지나치게 고집한다는 비판을 받았다. 조별리그에서 좋은 모습을 보이고 결정적 고비를 넘지 못하는 이유였다. 하지만 브라질월드컵에서는 달랐다. 제로톱이 통하지 않자 클로제 원톱 전술로 과감한 변화를 줬다. 측면 수비가 불안하자 람을 다시 오른쪽 윙백으로 돌렸다. 결승전에서는 선발명단에 넣었던 케디라가 부상하고, 케디라 대신 투입된 크라머가 교체돼 나가는 불운을 겪었지만 흔들림없는 용병술로 중심을 잡았다. 마지막 순간 한방을 터뜨리기 위해 괴체 카드를 마지막까지 아꼈다. 결국 괴체는 결승골을 터뜨리며 뢰브 감독의 믿음에 부응했다.
독일축구협회는 뢰브 감독에게 전폭적인 지지를 보내고 있다. 우승이라는 마지막 고비까지 넘은 뢰브 감독의 전성시대는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박찬준 기자 vanbaste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