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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이 든 성배' 홍명보도 비켜갈 수 없었다, 누가 그 자리를 원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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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이 든 성배'였다.

홍명보 감독도 비켜갈 수 없었다. 허정무 대한축구협회 부회장이 3일 홍 감독의 유임을 발표했다. 그러나 세상은 일주일 만에 정반대로 바뀌었다. 허 부회장이 앉은 그 자리에 10일 홍 감독이 있었다. 결국 자진 사퇴를 발표했다. 불과 2년 전 그는 런던올림픽에서 사상 첫 동메달을 선물하며 '영웅'으로 추앙받았다. 하지만 A대표팀 지휘봉을 잡은 후 382일 만에 도중하차했다. 꽃도 피우지 못하고 지고 말았다.

"이런 자리에서 마주하게 되니까 마음이 무겁고 가슴이 아프다. 월드컵 출발 전 국민들에게 희망을 주겠다는 얘기를 했는데 결과적으로 희망은 못 드리고 실망감만 줘 죄송스럽게 생각한다." 말문을 뗐다. 그리고 "1년여 시간을 보냈는데 많은 일이 있었다. 실수도 있었고, 잘못한 점도 있었다. 나로 인해 오해도 생겼다. 그것도 제가 성숙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 개인적으로 국가대표팀에서 1990년 선수로 시작해 24년간의 시간을 보냈다. 부족한 저에게 많은 격려도 해주셨고, 때로는 따끔한 채찍질도 해주셨다. 오늘 이 자리를 떠나겠다"고 자신의 거취를 밝혔다.

그는 2014년 브라질월드컵에서 첫 실패를 경험했다. 1무2패, 조별리그 탈락이 그의 성적표였다. 두 차례 사퇴 의사를 밝혔다. 벨기에와의 조별리그 최종전에서 0대1로 패해 16강 진출이 좌절된 후 황보관 기술위원장에게 사의를 표명했다. 귀국 후에도 뜻을 굽히지 않았다. 하지만 정몽규 대한축구협회 회장과의 면담 끝에 유임을 수용했다.

끝이 아니었다. 홀로 갈등을 계속했단다. 홍 감독은 "인천공항에 내리면서 사퇴라는 말을 하게 되면 비난을 피해갈수 있었지만 나는 비난까지 받는 것이 내 몫이라고 생각했다. 월드컵 기간에 경기력, 기술적인 문제. 기능적인 문제 등 모든 것들은 제가 판단해 결정을 했다. 순간 순간 최선의 판단이라고 생각했다. 결과적으로 실패였다"며 "새로운 사람이 와서 6개월이라는 시간을 가지고 팀을 만드는 것이 쉽지는 않다. 나의 사퇴로만 이어졌다면 나 역시 무책임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나 또한 지쳐있는 느낌이었다. 에너지 부분도 생각했다. 지금보다 훨씬 어려운 길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결과적으로 사퇴를 결심한 건, 갖고 있는 모든 능력들이 아시안컵까지는 무리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홍 감독의 마음을 돌린 것은 끊이지 않은 논란이었다. 축구 문제라면 모든 것을 감수하려고 했다. 꿋꿋이 버티려고 했다. 7일 '땅 투기 논란'이라는 악의적인 보도에 가족이 상처를 받았다. 변명이 더 구차했다. 홍 감독은 "비겁하게 살지는 않았다. 언론에서 제기하는, 훈련시간에 땅을 보러 다닌 일은 절대 없었다"라고 했다.

9일에는 대표팀 회식 동영상이 유출됐다. 브라질을 떠나기 전날인 29일 베이스캠프인 이구아수 현지 음식점에서 회식을 가졌다. 국내의 격앙된 분위기와 달리 '음주가무'를 즐기는 장면이 여과없이 담겨있었다. 자리를 지키는 것은 더 이상 무리라고 판단했다. 논란이 논란을 낳고, 결국 종착역까지 왔다. 한 꺼풀 한 꺼풀 벗겨지며 끝내 알몸이 됐다.

홍 감독은 "내 명예는 축구에서 얻었다. 축구에서 떨어져도 아무렇지 않다. 다만 축구 인생에서 성실하게 임했고 최선을 다했다"며 희미하게 미소를 지었다. 또 한 명의 지도자가 옷을 벗었다. 계약기간을 채우지 못했다. '독이 든 성배'의 오명은 계속됐다.

A대표팀 감독직은 지도자라면 꿈꾸는 최고의 자리다. 하지만 환희보단 눈물이다. 또 누군가 그 자리를 채울 것이다. 그러나 '독이 든 성배'는 한국 축구에서 쉽게 지워지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최용수 FC서울 감독은 "홍 감독님의 사퇴 기자회견을 보면서 많은 것을 느꼈다. 한국 축구사에서 슬픈 날로 기억될 것 같다. 동료이자 후배로서 마음이 아팠다"고 했다.

"독이 든 성배의 본질은 대표팀 감독이 나가는데 있어 주위의 영향이 있다는 점이다. 앞으로도 어떤 분이 올지는 모르겠지만 여기 계신 분들이 도움을 주셨으면 한다." 홍 감독의 마지막 바람이었다. 김성원 기자 newsme@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