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의 이름으로, 파부침주(破釜沈舟)의 심정으로 철저하게 준비하겠다."
2010년 남아공월드컵에서 나이지리아와의 조별리그 최종전을 앞둔 허정무 전 감독(브라질월드컵 단장)의 출사표였다. 파부침주, 밥 지을 솥을 깨뜨리고 돌아갈 배를 가라앉힌다는 뜻이다. 살아 돌아오기를 기약하지 않고 결사적 각오로 싸우겠다는 의지였다. 당시 1승1패의 허정무호는 나이지리아와 비기기만해도 사상 첫 월드컵 원정 16강 진출을 이룰 수 있었다. 고지를 밟았다. 나이지리아와 2대2로 비기며 조별리그를 통과했다.
4년이 흐른 브라질월드컵, 결국 마지막까지 왔다. 홍명보호는 27일 오전 5시(이하 한국시각) 브라질 상파울루 아레나 코린치안스에서 벨기에와 조별리그 최종전을 치른다. 4년 전에 비해 상황은 더 열악하다. 1무1패(골득실 -2)의 한국은 그야말로 벼랑 끝이다. 일찌감치 16강 진출을 확정지은 벨기에(승점 6)에 비겨도 안된다. 같은 시각 열리는 알레리(승점 3·1승1패·골득실 +1)-러시아전(승점 1점·1무1패·골득실 -1)에서 알제리가 이겨도 눈물이다. 두 팀이 비길 경우 홍명보호는 4골 차 이상 승리해야 한다. 러시아가 이기면 한국은 2골차 이상 승리해야 새로운 미래가 펼쳐진다.
벨기에전의 화두는 대승이다. 첫째도 골, 둘째도 골이다. 그러나 일본 축구의 몰락이 '선물'한 교훈이 있다. 일본은 25일 쿠이아바의 아레나 판타날에서 벌어진 콜롬비아와 C조 조별리그 최종전에서 1대4로 참패하며 16강 진출이 좌절됐다. 전반을 1-1로 마쳤다. 그러나 후반 내리 3골을 허용하며 처참하게 무너졌다. 다득점을 위해 지나치게 공격적인 전술을 펼치다 후반 체력이 고갈됐다. 집중력이 떨어졌다. 후반 대반전을 모색했지만 현실은 참혹했다.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일본도 선택의 폭이 넓지 않았지만 홍명보호보다는 훨씬 유리했다. 그리스가 코트디부아르를 꺾을 경우 콜롬비아에 1대0으로 승리해도 조별리그를 통과할 수 있었다. 전반 1-1이 됐을 때 후반에 틀어막고 한 골만 더 추가해도 16강 진출을 이룰 수 있었다. 그러나 공격 일변도의 전술에 결국 꿈은 좌절됐다. 일본의 브라질 여정은 끝이 났다.
끝날 때까지 끝난게 아니다. 홍명보호, 최후의 믿음이다. 대승은 필수다. 동시에 지켜야 한다. 무실점이 중요하다. 알제리전(2대4 패)이 반복되면 실낱 희망은 물거품이 된다. 되돌리기 싫지만 알제리전에선 중앙 수비, 홍정호(아우크스부르크)와 김영권(광저우 헝다)의 붕괴로 자멸했다. '더블볼란치(두 명의 수비형 미드필더)'의 한 축이자 믿었던 한국영(가시와)도 '진공 청소기' 역할을 하지 못했다. 오른쪽 윙백 이 용(울산)은 허공만 맴돌았다. 골키퍼 정성룡(수원)은 최악의 경기력으로 버팀목이 되지 못했다.
벨기에전에서는 다득점과 무실점이 공존해야 한다. 서두르면 안된다. 상파울루는 또 다른 환경이다. 아레나 코린치안스는 해발 800m에 자리해 있다. 러시아와의 1차전이 열린 쿠이아바 아레나 판타날은 165m, 알제리와 2차전을 벌인 포르투알레그레 에스타디오 베이라-리우는 10m였다. 800m는 고지대의 시작이다. 쉽게 지치고 피로는 저지대보다 늦게 풀린다. 체력적인 부담이 있다.
급할수록 돌아가라고 했다. 90분, 힘의 분배가 이뤄져야 한다.
홍명보호는 '기적의 16강 진출'에 도전한다. 잃을 것은 없다. 흔들림없는 호흡 유지, 선택이 아닌 필수다. 무리수를 둘 경우 추가 무너질 수 있다.
운명의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무실점이 16강 문을 열수 있는 전제 조건이다. 김성원 기자 newsme@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