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닙니다. 나가겠습니다. 뛸 겁니다."
감독의 권유에 세 번이나 'No'라고 말할 수 있는 '간 큰 선수'가 한국 프로야구에 과연 있을까? 있다. 꿋꿋하게 자신의 소신을 지킨 이 선수. 바로 삼성 라이온즈 주전 3루수 박석민이다. 박석민이 삼성 류중일 감독의 만류를 뿌리치고 경기 출전을 감행했다. 그래도 류 감독은 전혀 노여워하지 않았다. 박석민에 대한 걱정과 든든함을 너털웃음에 실어 날렸다.
류 감독은 19일 인천 문학구장에서 열린 SK 와이번스와의 원정경기를 앞두고 박석민의 상태를 면밀히 살폈다. 이유는 전날 박석민이 SK 외국인 선발 레이예스의 147㎞짜리 직구에 머리를 맞았기 때문. 천만다행으로 헬멧이 보호해준 덕분에 박석민은 의학적으로는 큰 부상을 당하진 않았다. 당시 곧바로 인근 병원에 가서 X-레이와 CT 촬영을 했는데, 큰 이상 소견은 나오지 않았다.
그래도 안심할 수는 없는 일이다. 워낙 큰 충격이었다. 류 감독은 "타자가 머리쪽에 공을 맞게 되면, 충격도 크고 또 몸쪽 공에 대한 두려움도 생긴다"면서 박석민의 타격 밸런스가 나빠질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또 류 감독은 덕아웃에 놓여있던 타자의 헬멧을 직접 들고 와 살펴보면서 "내가 현역 시절에는 헬멧이 조금 더 두꺼운 재질이었는데, 요즘에는 선수들이 가벼운 것을 선호해 헬멧 재질이 상당히 얇아졌다"는 말도 했다. 박석민에 대한 걱정에서 나온 행동이다.
하지만 박석민의 투지는 '헤드샷'에도 전혀 줄어들지 않았다. 오히려 더 강한 승부욕이 생긴 듯 했다. 그래서 류 감독이 경기 전 세 차례나 만류하는 데도 불구하고 경기 출전 의지를 불태웠다. 이날 경기전 연습 때 류 감독은 먼저 박석민에게 현재 어떤 상태인 지 물었다. 박석민은 "약간 어지러운 듯 하다"고 답했다.
그러자 류 감독은 잠시 후 박석민에게 "(오늘)뛸 수 있겠나?"라고 물었다. 엔트리를 정해야 하는 시점이다. 박석민은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뛸 수 있습니다"라고 답했다. 류 감독은 또 한참 있다가 다시 물었다. "석민아, 오늘 쉴래?" 대답은 달라지지 않았다. "아닙니다. 나가겠습니다."
뭐든 적어도 삼 세번은 물어봐야 한다. 류 감독은 엔트리를 정할 시점이 거의 다 되어 다시 박석민에게 물었다. 이번에는 강한 권유였다. "오늘 쉬는 게 낫지 싶다." 사실상 휴식하라는 소리다. 그래도 박석민은 꿋꿋했다. "나갑니다. 뛸 겁니다."
그제야 류 감독은 박석민의 눈빛에 담긴 강한 투지를 인정했다. 그리고는 별말없이 박석민을 3번 타자로 선발 출전시켰다. 평소와 다름없이 3루 수비도 보게 했다. 박석민의 투지는 분명히 '허세'가 아니었다. 이날 0-0으로 맞선 3회초 1사 1, 2루에서 좌전 적시타로 선취점을 올렸다. 결국 박석민은 4타수 1안타 1타점 1득점으로 제 몫을 해낸 뒤 팀이 7-0으로 앞선 7회말 수비 때 김태완으로 교체됐다. 자신의 할 일은 똑바로 해낸 박석민은 그제야 덕아웃에서 편안히 휴식을 취하며 동료들을 응원했다.
인천=이원만 기자 wman@sportschosun.com